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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10/13(11:50) from 210.218.171.91 | |
| 작성자 : 유한짐 (yhanjim@chollian.net) | 조회수 : 3241 , 줄수 : 112 |
| 알바니아-한글 사전 만들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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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알바니아서 외롭게 한글사전 만드는 쿠이팀 자니 (사진/알바니아 외무부의 아시아-아프리카 국장인 쿠이팀. 서양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몸가짐이나 마음씨는 한국의 참한 `촌색시` 같은 사람이다.) '영어-아카사전' '리수-영어사전' '영어-라후사전' '몽-영어사전'…. 이 생소한 사전들은 10여년전 타이-버마-라오스 국경의 소수민족 분쟁을 취재하면서 만났다. 당시 취재의 밑거름 삼아 1960년대 초 미국 육군이 발행한 ‘인도차이나의 소수민족들’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훑다가 책꽂이 한 모퉁이에서 발견한 이 사전들이 나를 크게 놀래킨 기억이 난다. 첫째 소수민족어 사전의 발행 자체에 충격을 받았고, 그 다음은 사전의 정밀도에 감탄을 했고, 한숨 돌리면서 그 사전들의 목적성에 소름이 끼치면서 종합적으로 크게 놀란 셈이다. 소수민족과 사전, 그리고 전쟁… 10만여명 남짓한 이 지역의 산악민족 ‘아카’는 남중국을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50만여명, 리수족과 라후족 그리고 몽족도 기껏 1백만∼2백만명 인구를 지닌 소수민족들이다. 말만 있고 글이 없는 소수민족들. 그래서 사전들은 양방향 모두 영어발음으로 표기됐지만 그 세밀함은 ‘생활어’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돌이켜 보면 미국 육군의 소수민족 보고서와 소수민족사전, 그리고 미국의 베트남 침공, 동시에 CIA가 인도차이나반도의 사회주의 혁명 봉쇄를 위해 라오스의 소수민족인 몽족을 무장시켜 수행한 이른바 ‘비밀전쟁’… 이 일련의 역사적 흐름들은 ‘사전과 전쟁’의 관계로 읽혀진다. 지나친 상상력일까? (사진/쿠이팀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깨알 같은 낱말 쪽지. 컴퓨터를 마련할 형편이 못 돼 일일이 손으로 적는다.) 그리고 나는 올해 코소보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알바니아를 들락거리면서 10년만에 사전 때문에 두번째 놀랐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게 창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어사전이 아니라 한글사전 때문이다. ‘쿠이팀 자니’. 이 지역을 드나들었던 한국 기자들 사이에는 제법 알려진 인물이다. 97년 알바니아가 무정부상태에 빠지면서 혼란이 극에 달했던 당시, 한국 기자들에게 유창한 한국말로 취재를 도왔던 꾸이팀씨. 그는 올해 코소보전쟁이 터지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진기지가 된 알바니아로 다시 몰려든 수많은 한국 기자들에게 시달렸다. 현재 알바니아 정부 외무부의 아시아-아프리카 국장인 꾸이팀씨는 분명히 서양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몸가짐이나 마음씨는 우리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한 ‘촌색시’같은 사람이다. 매우 겸손하고 차분한 선비 풍모를 지닌 이 꾸이팀씨가 바로 한글사전으로 나를 놀래킨 주인공이다. 인구 4백만명의 알바니아에서 한국 말을 할 수 있는 딱 한 사람. 이 문화재 같은 사람이 현재 보물같은 한글사전을 만들고 있다. 반대쪽의 7천만 남북한 가운데 알바니아말을 연구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악조건 속에서. 그의 한글사전 편찬작업을 기웃거리면서 느낀 ‘부끄러움’은 마치 어질러놓은 내집 안마당을 누가 대신 정리해 주고 있을 때 생기는 숨고 싶은 심정 같은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글사전만은 우리가 앞장서고 한글을 가꾸는 이들을 조건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대원칙 같은 것이 우리에겐 없다는 부끄러움, 이건 말하자면 한국사회가 꾸이팀씨에게 빚을 져도 크게 지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말을 다듬는데 남한보다 더 많은 공을 들여왔다는 북한도 꾸이팀씨의 한글사전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우리말 뿌리가 북한에 있는 탓이다. 꾸이팀씨는 외교관으로 평양에서 12년동안 근무하면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어학과(국어과에 해당)에서 정통으로 한글을 배웠다. “청춘을 평양에 바쳤고 청춘을 한글에 바쳤다”는 꾸이팀씨.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셋인 그는 “헛먹는 나이가 싫고 한글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2년 전부터 남몰래 한글사전을 만들어오고 있다. 97년 알바니아 취재 때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있고 그 무렵 꾸이팀씨는 이미 한글사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부끄러운 일이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2년만에 귀띔했다. 너무 서먹서먹한 남북의 말꼴 현재 그가 만들고 있는 한글사전은 정확히 말해 알바니아-한국어 사전이다. 약 5만단어를 꿈꾸는 이 사전은 2년동안 ‘A,B,C’장을 끝내고 막 ‘D’장을 시작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사전작업을 ‘시간과의 싸움’으로 표현했다. “직업이 외교관이다 보니 출장이 잦아 마음먹은 대로 진행할 수 없어 안타깝다”는 그는 해외출장 중에도 사전생각 뿐이라며, 빼곡이 적어 들고 다니는 깨알같은 낱말 쪽지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쓰면 일손이 크게 줄텐데….” 무심코 던진 말에 꾸이팀씨는 “우리 월급으로는 힘들다. 찾아보면 몇몇 도움받을 데가 있겠지만 얕보이기도 싫고 더구나 외교관 신분이라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며 정색을 한다. 그 흔해빠진 컴퓨터나 한글프로그램이 없어 일일이 손으로 적어가는 꾸이팀씨의 이 사전작업은 우리시대의 비문화적인 언어태도와 몰지각한 언어정책에 대한 우리들의 참회록을 대신하고 있다. 1991년 한국-알바니아 국교 수립 뒤, 한국에서 세달간 다시 남쪽말을 접할 기회가 있었던 꾸이팀씨는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너무 다른 남과 북의 말꼴·말투가 서먹하게 느껴졌고, 북쪽말에 비해 생소한 외래어를 지나치게 혼용하는 남쪽의 언어생활이 수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남과 북을 섭렵한 꾸이팀씨가 느낀 언어의 이질성, 50년만에 서로 외래어처럼 달라져 버린 남과 북의 말은 통일에 대한 준비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는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고 있는 영어의 공용화 논쟁에 대해 “통일에 대한 역사관이 없는 얼빠진 놈들의 말장난이다. 남북한 말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는데 무슨 영어냐”고 분노한다. “자기들 말부터 완전히 다듬은 뒤에 영어든 공용어든 이야기해야지….” 외롭게 한글사전을 만들어가고 있는 꾸이팀씨는 우리시대의 반동적인 언어가치에 사정없이 죽패를 내리쳤다. 알바니아-한국어사전이 끝나는 대로 다시 한국-알바니아사전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꾸이팀씨. 청춘을 한글에 바친 그는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한글꿈’을 꾸고 있다. “사전 다음에는 알바니아의 대학에 한국어과를 개설해서 본격적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싶다”는 꿈이 그것이다. 그리고 10대 초반의 두 아들을 한국에 유학시켜 알바니아의 한글맥을 잇겠다는 계획도 그가 지닌 한글꿈 가운데 하나다. 꾸이팀씨가 한글의 꿈을 실현시키느냐 마느냐는 일은 이제 한글의 본디 주인들에게 넘어와 있다. 꾸이팀이라는 알바니아의 한 낯선 사나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글을 위해서. 그리고 한글의 주인들에게는 소수민족 사전과 미국 육군의 소수민족 보고서가 지녔던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볼 시간이 다가왔다. 평화철학과 통일철학을 바탕삼아 세계 속의 한글사전을 바라볼 그런 시간이. 티레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한겨레21 제 278호 지구촌/희망의 이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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