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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집 |
| 2023/12/16(02:26) from Anonymous Host | |
| 작성자 : 최봉영 | 조회수 : 11 , 줄수 : 219 |
| <訓民正音 序文>을 풀이한 글을 페북에 올렸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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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따풀 학당 내가 나흘 전에 <訓民正音 序文>을 풀이한 글을 페북에 올렸는데, 김슬옹님이 그것을 읽고서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김슬옹님은 댓글에서 나의 글에 대해 몇 가지 마땅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서 내가 답해줄 것을 기대한다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이 너무 길어서 댓글로 달면 읽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여기에 쓰게 되었다. - 묻고 따지는 글이라서 밑에서는 존칭을 쓰지 않도록 하겠다. - < 김슬옹이 단 댓글 > 늘 선생님 글이나 말씀에서 배우는 바가 커서 마음속의 스승님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더욱이 첫 문장의 현대말 번역은 처음 본 번역이어서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큼은 번역은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옮겨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 있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첫째, 번역문 자체가 일반적인 쓰임새와 다릅니다. 현대말에서 ‘말씀’은 높이거나 겸양 차원에서 쓰는데 이 문장에서 높임과 겸양을 적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해본에서 말씀이라고 옮겼다고 해서 그때의 쓰임새와 지금의 쓰임새가 다르므로 그대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15세기에 ‘말(言):말씀(語)’은 대체로 ‘말’은 입말 중심의 포괄적인 뜻으로 ‘말씀’은 발화된 좀 더 구체적인 뜻으로 쓴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해 쓰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실제 쓰인 문맥에 따라 적절하게 옮기면 될 듯 싶습니다. 둘째, 번역은 주석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되고 소통될 때 가장 좋은 번역인데, 선생님께서 옮긴 번역은 주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셋째, 세종 서문 번역은 ‘정인지서’에서 자세하게 풀이해 놓았으므로 그 맥락속에서 이해하고 풀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번역은 ‘정인지서’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정인지 말대로 이 문장은 조선의 입말과 중국의 입말이 다른데 중국의 입말에 맞는 한자나 한문으로 적는 언어모순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뿐이므로 그런 의도를 살려서 최대한 간결하게 옮겨야 합니다. 넷째 국한문 혼용으로 옮기는 것은 쉽고 정확하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기 위한 세종 정신, 훈민정음 정신에 어긋납니다. 한자가 필요하면 괄호에 넣으면 그만입니다. 혹시 후학으로서 주제넘게 잘못 말씀 드린 점이 있으면 엄히 꾸짖어 주십시오. < 최봉영이 쓴 본글 > <訓民正音 序文>은 세종대왕이 지은 것으로 매우 짧은 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글을 가지고 많은 말을 해왔다. 특히 요즘에 더욱 말들이 많아졌다. '말씀'이 어떻고, '중국'이 어떻고 하다가 이제는 글자의 수까지 헤아려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訓民正音>을 짝사랑해왔다. 나는 사람이 입으로 내는 말소리를 세종대왕이 어떻게 차렸는지 밝혀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끊임없이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오늘은 <序文>이 뜻하는 바를 나름으로 풀어 보겠다. 《訓民正音 序文 풀어보기》 ◇ 우리나라는 말씀하는 것이 中國과 달라서, 文字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씀>은 사람이 낱낱의 말을 하나하나 쌓아서, 입밖으로 나오는 말이 값을 제대로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中國은 皇帝가 있는 나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일상말로 江南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우리나라는 海東에 자리한 東國이다. 이는 세조 때에 시작되어 성종 때에 완성된 <東國通鑑>에 또렷이 드러난다. 그들은 단군조선에서 고려왕조에 이르는 역사를 하나의 책으로 엮어서 <東國通鑑>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文字>는 漢文/漢語/吏讀 따위에 쓰는 漢字를 두루 가리키고 있다.] ◇ 이런 까닭으로 어린 백성이 말을 글에 담아서 니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서 <어린 백성>은 말을 글로 옮기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을 싸잡아서 일컫는 말이다.] [漢文을 배우지 못한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漢文이나 吏讀를 배운 이들조차 말을 글로 옮길 때,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일이 곧잘 일어났다.] [사람들이 재판장에서 목숨을 걸고서 다투는 내용을 글로 꾸미는 일이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심정을 글에 담는 일과 같은 것은 漢文이나 吏讀로 하기 어렵거나 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말과 글을 그냥 범범하게 배우고 쓰는 버릇에 젖어 살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서 어리석은 백성이 어리석지 않은 백성이 되는 일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 내가 이를 풀어주기 위해서 어엿비 녀기는 마음으로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쉽게 익힐 수 있게 함으로써 나날이 쓰는 일을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여기서 세종대왕은 신하들이 漢字와 漢文에서 얻는 이익에 이끌려서 <훈민정음>을 헐뜯고 내치는 일을 그만두도록 만들기 위해서 모든 일이 오로지 백성을 위하는 하나의 뜻에서 비롯된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 최봉영이 쓴 답글 > 1. 풀이하는 일과 번역하는 일 1-1. 김슬옹은 내가 <훈민정음 서문>을 풀이한 것을 읽고서, 그것에 대해 “첫 문장의 현대말 번역은 처음 본 번역이어서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만큼은 번역은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옮겨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 있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밑에 네 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다. 1-2. 내가 <훈민정음 서문>을 풀이한 첫 문장은 “우리나라는 말씀하는 것이 中國과 달라서, 文字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이다. 이것은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나랏말ᄊᆞᆷ이 중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ᆞㅣ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를 내가 나름으로 풀이한 글이다. 나는 풀이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주를 달았다. 1. [여기서 <말씀>은 사람이 낱낱의 말을 하나하나 쌓아서, 입밖으로 나오는 말이 값을 제대로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2. [여기서 中國은 皇帝가 있는 나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일상말로 江南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우리나라는 海東에 자리한 東國이다. 이는 세조 때에 시작되어 성종 때에 완성된 <東國通鑑>에 또렷이 드러난다. 그들은 단군조선에서 고려왕조에 이르는 역사를 하나의 책으로 엮어서 <東國通鑑>이라고 불렀다.], 3. [여기서 <文字>는 漢文/漢語/吏讀 따위에 쓰는 漢字를 두루 가리키고 있다.] 1-3. 김슬옹은 내가 <훈민정음 서문>을 나름으로 풀이해놓은 것을 내가 <훈민정음 서문>을 번역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훈민정음 서문>을 풀이하는 일과 번역하는 일은 크게 다르다. <훈민정음 서문>은 漢文으로 된 원본이 있고, 원본을 한국말로 번역해놓은 언해본이 있어서 <훈민정음 서문>을 다시 번역하는 일은 필요가 적거나 없는 일이다. <훈민정음 서문>을 번역하는 것은 한문으로 된 원본을 한국말, 영국말, 일본말 따위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1-4. 나는 <훈민정음 서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훈민정음 서문>을 한국말로 번역해놓은 <언해본 서문>을 묻고 따져서 나름으로 풀이를 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한 까닭은 <훈민정음 서문>을 번역한 이들이 이제까지 <언해본 서문>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해본 서문>에 나오는 ‘國-나라’, ‘語音-말씀’, ‘ 中國-江南’, ‘文字’, ‘입겾’, ‘겿에 쓰는 字’, ‘民-백성’ 따위를 또렷이 풀이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범범하게 번역하는 일을 해왔다. 특히 ‘語音-말씀’과 ‘中國-江南’, ‘文字’와 같은 것은 <훈민정음 서문>이 뜻하는 바를 알아보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낱말인데도 제대로 풀이한 것을 보지 못했다. 1-5. 김슬옹은 내가 <훈민정음 서문>을 번역한 것으로 보고서, “첫 문장만큼은 번역은 좀 더 쉽고 정확하게 옮겨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 있어 받아들이기 힘듭니다.”라고 말하면서 네 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내가 <훈민정음 서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지적은 실제와 맞지 않는다. 그런데 김슬옹이 지적한 것 가운데는 번역의 문제를 넘어서 <훈민정음 서문>을 풀이하는 것과 연관된 것도 있어서 나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2. ‘나랏말ᄊᆞᆷ(-國之語音)’에서 ‘나라’와 ‘말ᄊᆞᆷ’ 2-1. 나는 “나랏말ᄊᆞᆷ이 中國에 달아 文字와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 ᄊᆞㅣ”를 “우리나라는 말씀하는 것이 中國과 달라서, 文字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고 풀었다. 나는 ‘나랏말ᄊᆞᆷ(-國之語音)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말ᄊᆞᆷ하는 것은’을 뜻한다고 보고서 ‘나랏말ᄊᆞᆷ이’를 ‘우리나라는 말씀하는 것이’로 줄여서 풀었다. 내가 이렇게 풀이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2-2. ‘나랏말ᄊᆞᆷ’에서 ‘나라(-國)’는 그때의 나라인 조선왕조와 조선왕조가 이어받은 것으로 여기는 앞선 나라들을 모두 싸잡아서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랏말ᄊᆞᆷ에서 ‘나라’를 ‘우리나라’라고 풀었다. 나는 ‘나라’를 ‘우리나라’ 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풀어야 뜻이 한층 또렷해진다고 보았다. 2-3. ‘나랏말ᄊᆞᆷ’에서 ‘말씀(-語音)’은 사람이 말을 소리에 담아서 주고받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말(-言/-語/-言語)’은 사람이 배우고 쓰는 말을 두루 일컫는 말이라면 ‘말ᄊᆞᆷ(-語音)’은 사람이 말을 소리에 담아서 주고받는 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나 한국의 옛날 자료를 두루 살펴보면 ‘言語’는 많이 썼으나, ‘語音’은 특별히 말소리를 가리키는 경우에만 쓴 것을 알 수 있다. 2-4. 한국말에서 ‘말ᄊᆞᆷ’은 ‘말ᄊᆞᆷ하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말ᄊᆞᆷ’이라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말ᄊᆞᆷ이 되게 하는 것’을 ‘말ᄊᆞᆷ하다’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일’이라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일이 되게 하는 것’을 ‘일하다’라고 말하고, ‘농구’라고 하는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농구가 되게 하는 것’을 ‘농구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2-5. ‘말ᄊᆞᆷ’에서 ‘말’은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쓰는 ‘말’을 가리킨다. 한국사람은 ‘말’이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내가 말이야, 어제 말이야, 늦잠을 자서 말이야, 기차를 놓쳐서 말이야, 일이 엉망이 되었단 말이야.”와 같이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을 ‘말ᄊᆞᆷ’이라고 하게 되면 ‘ᄊᆞᆷ’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ᄊᆞᆷ’의 뜻을 알려면 요모조모로 묻고 따져야 한다. 2-6. ‘말ᄊᆞᆷ’에서 ‘ᄊᆞᆷ’은 ‘ᄊᆞ다’에 뿌리를 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말ᄊᆞᆷ’은 ‘말’로 싸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마치 보쌈이 ‘보’로 싸는 것을 뜻하는 말인 것과 같다. (이때 ‘말ᄊᆞᆷ’에서 ‘ᄊᆞᆷ’은 ‘ㅆ=ㅅ+ㅅ’으로 되어 있고, ‘보ᄊᆞᆷ’에서 ‘ᄊᆞᆷ’은 ㅆ=ㅂ+ㅅ‘으로 되어 있다.) ‘말ᄊᆞᆷ=말+ᄊᆞᆷ’에서 볼 수 있는 ‘ᄊᆞ다’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하나는 사람이 무엇을 쌓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사람이 담장을 ᄊᆞ다.”라고 말할 때의 ‘ᄊᆞ다’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무엇을 쌓아서 무엇이 값을 갖게 하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이것은 값이 싸다./너는 맞아도 싸다.”라고 말할 때의 ‘ᄊᆞ다’이다. 사람들은 이런 ‘ᄊᆞ다’를 가지고 담, 탑, 덕, 공, 지식, 지혜 따위를 쌓는 일을 말한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무엇을 쌓아서 무엇이 값을 갖게 하는 일을 뜻한다. 2-7. 한국사람은 사람이 말을 할 때,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가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고, 말을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늘어놓는 방식으로 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사람이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가는 방식으로 해서 말이 제 값을 갖게 하는 것을 ‘말ᄊᆞᆷ’이라고 일컫고, ‘말ᄊᆞᆷ’을 밖으로 드러내어 ‘말ᄊᆞᆷ’이 되게 하는 것을 ‘말ᄊᆞᆷ하다’라고 일컬었다. 그들은 사람이 입으로 말을 하는 것이 담, 탑, 덕, 공, 지식, 지혜 따위를 쌓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2-8. 사람들이 말을 이리저리 늘어놓은 것은 온갖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말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은 오로지 위로 곧게 나아간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이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서 말하려면 말이 제 값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의 소리와 뜻을 잘 알아야 하고, 말을 차리는 법을 잘 알아야 한다. 사람이 ‘말’을 그냥 말하는 것은 쉬워도, ‘말ᄊᆞᆷ’으로 차려서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2-9. <표준국어대사전>은 ‘말씀’의 뜻을 “1. 남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 예) 선생님의 말씀대로 저는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 자기의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 예) 말씀을 올리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는 ‘말씀’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잘못된 뜻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나는 한국말에서 사람들이 같은 낱말을 가지고서 남을 높이는데도 쓰고, 자기를 낮추는데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진지’라는 낱말을 가지고서 “선생님께서 나보다 먼저 진지를 드셨다.”라고 말하면 ‘진지’가 선생님을 높이는 뜻이 되고, “나는 선생님보다 먼저 진지를 먹었다.”라고 말하면 ‘진지’가 나를 낮추는 뜻이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2-10. 선생님이 ‘학생에게 말씀을 하시고’, 학생이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선생님이나 학생이 모두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선생님이 말하든 학생이 말하든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서 말이 제 값을 갖게 말하면 모두 ‘말ᄊᆞᆷ’이 된다. ‘말ᄊᆞᆷ’은 말이 제 값을 지닐 수 있도록 말하는 것으로서, 말을 말답게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까닭으로 ‘말ᄊᆞᆷ’을 할 수 있는 자신을 가지면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려도 감히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말씀 해보겠습니다.”라고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다. 2-11. 학생이 “선생님은 언제나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서 말이 제 값을 갖도록 말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학생은 선생님이 하는 모든 말을 ‘말ᄊᆞᆷ’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학생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선생님이 하는 말을 그냥 그런 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학생이 선생님에게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말을 하나하나 차례로 쌓아서 말이 제 값을 갖도록 말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학생은 선생님에게 말할 때에 반드시 ‘말ᄊᆞᆷ’을 드리는 방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학생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선생에게 그냥 말을 하게 된다. 2-12. 중국말에서 ‘語音’은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말하는 것’이나 ‘입으로 말하는 말소리’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國之語音’을 ‘나랏말소리’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런데 세종대왕은 ‘國之語音’을 ‘나랏말소리’로 옮기지 않고 ‘나랏말ᄊᆞᆷ’으로 옮겼다. 세종대왕이 ‘國之語音’을 ‘나랏말ᄊᆞᆷ’으로 옮긴 것은 나름으로 깊은 뜻을 담고 있다. ‘훈민정음’은 말을 말답게 말하는 ‘말ᄊᆞᆷ’의 말소리를 밝혀서 글로 적을 수 있게 만든 ‘바른 말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ᄊᆞᆷ’과 ‘말ᄊᆞᆷ하다’가 어떤 바탕을 갖고 있는 말인지 묻고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랏말ᄊᆞᆷ’의 뜻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고, <표준국어대사전>조차 뜻을 이상하게 풀이하고 있다. 3. ‘중국에 달아(-異乎中國)’에서 ‘中國’과 ‘東國’ 3-1. “나랏말ᄊᆞᆷ이 中國에 달아 文字와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 ᄊᆞㅣ”에 나오는 ‘中國’을 <언해본 서문>에는 “中國은 皇帝가 있는 나라로서 우리나라 사람이 일상말로 江南이라고 부르는 곳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中國’은 아주 오래된 낱말로서 中原에 자리한 中國과 中原을 둘러싼 주변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시대나 상황에 따라서 中原과 中國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그때마다 ‘中國’이 가리키는 것을 짚어주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언해본 서문>에서 ‘中國’을 말하면서 ‘江南’이라고 일컫는 ‘中國’을 말하고 있다. 3-2. <언해본 서문>에서 황제가 있는 나라인 ‘中國을’ 말할 때, 우리나라는 ‘海東-바다의 동쪽’에 자리한 ‘東國’을 말한다. 이는 세종대왕이 漢字의 말소리를 훈민정음으로 적어서 <東國正韻>을 만들게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세조 때에 시작되어 성종 때에 완성된 <東國通鑑>에도 잘 드러난다. 그들은 단군조선에서 고려왕조에 이르는 역사를 하나의 책으로 엮어서 <東國通鑑>이라고 불렀다. 3-3.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르는 때에 중국에는 원나라가 사라지고, 명나라가 일어났고, 동국에는 고려가 사라지고 조선이 일어나는 변화가 있었다. 1368년에 주원장이 양자강 지역을 근거로 명나라를 세우게 되자, 고려와 조선은 두 개의 중국, 곧 원나라가 자리한 북쪽의 중국과 명나라가 자리한 남쪽의 중국을 상대하게 되었다. 고려와 조선은 북쪽과 남쪽에 자리한 두 개의 중국을 놓고서 외교 관계를 펼쳐야 했던 까닭으로 북쪽의 중국말을 중심으로 漢語를 공부하던 것을 넘어서 남쪽의 중국말까지 아울러 공부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3-4. 조선초기에 ‘漢文’이나 ‘漢語’를 공부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漢字’의 말소리를 바르게 알아보는 것이었다. ‘漢文’의 경우에는 말소리가 중국말과 달라도 조선사람끼리 서로 통할 수 있으면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漢語의 경우에는 중국사람과 통해야 하기 때문에 말소리가 중국말과 같아야 했다. 이런 사정 속에서 세종대에 漢字의 말소리를 훈민정음으로 적은 <東國正韻>이 만들어 졌고, <洪武正韻>에 나오는 말소리를 훈민정음으로 적는 <洪武正韻譯訓>이 시작되었다. 3-5. 세종대왕이 한국말의 말소리를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자, 신하들은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대왕은 글자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을 밝힐 필요가 있었는데, 그때 앞세운 것이 한국사람이 漢文과 漢語를 공부할 때, 漢字의 말소리를 바르게 낼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중국과 조선은 말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말소리도 다르기 때문에 한국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로 漢字의 말소리를 적을 수 있어야 漢文과 漢語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논리였다. 3-6.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 때, 한국말의 말소리를 소리가 나는 대로 적는 것을 넘어서 중국말, 일본말, 여진말, 몽고말과 같은 온갖 말의 말소리를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뛰어난 글자를 만들고자 꾀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사람이 입으로 내는 말소리를 낱낱의 조각 말소리로 쪼개서 ‘ㄱ’, ‘ㄴ’, ‘ㄷ’, ‘ㄹ’, ‘ㅏ’, ‘ㅓ’, ‘ㅗ’, ‘ㅗ’와 같은 조각 글자를 만들고, 이런 조각 글자를 아우르고 어우러는 방식으로 ‘가’, ‘난’, ‘달’, ‘랗’, ‘아’, ‘에’, ‘옷’, ‘없’과 같은 수많은 낱글자를 만들어서 한국말은 물론이고 중국말, 일본말, 여진말, 몽고말과 같은 것을 소리가 나는 대로 쉽게 적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것은 외국말을 배우는 쓰는 <朴通事>, <老乞大>, <捷解新語>와 같은 교재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4. <鄭麟趾 序文>에 대해서 4-1. 김슬옹은 내가 “나랏말ᄊᆞᆷ이 中國에 달아 文字와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 ᄊᆞㅣ”를 “우리나라는 말씀하는 것이 中國과 달라서, 文字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한 것을 보고서, “세종 서문 번역은 ‘정인지서’에서 자세하게 풀이해 놓았으므로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풀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번역은 ‘정인지서’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정인지 말대로 이 문장은 조선의 입말과 중국의 입말이 다른데 중국의 입말에 맞는 한자나 한문으로 적는 언어모순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뿐이므로 그런 의도를 살려서 최대한 간결하게 옮겨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김슬옹은 내가 ‘정인지 서’의 맥락을 어떻게 벗어나 있는지 또렷하게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문장은 조선의 입말과 중국의 입말이 다른데 중국의 입말에 맞는 한자나 한문으로 적는 언어모순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뿐이므로”라고 해서 ‘정인지의 서’의 핵심이 언어모순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정인지 서’를 읽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나름으로 많은 생각을 해본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해보고자 한다. 4-2.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3년이 지난 뒤에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만들어졌을 때, 정인지가 책의 끝에 쓴 서문은 다음과 같다.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字,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之字, 以通其用, 是猶柄鑿之鉏鋙也, 豈能達而無礙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吾東方禮樂文物, 侔擬華夏, 但方言俚語, 不與之同,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 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 昔新羅 薛聰始作吏讀, 官府民間, 至今行之, 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二氣之妙, 莫不該括。 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崇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 以是解書, 可以知其義; 以是聽訟, 可以得其情。 字韻則淸濁之能卞, 樂歌則律呂之克諧, 無所用而不備無所往而不達, 雖風聲鶴唳雞鳴狗吠, 皆可得而書矣。 遂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應敎崔恒、副校理朴彭年ㆍ申叔舟、修撰成三問、敦寧注簿姜希顔、行集賢殿副修撰李塏ㆍ李善老等謹作諸解及例, 以敍其梗槪, 庶使觀者不師而自悟。 若其淵源精義之妙則非臣等之所能發揮也。 恭惟我殿下天縱之聖, 制度施爲, 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4-3. 정인지가 쓴 서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는 글이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그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들어서 만물의 事情을 통하게 하고, 三才의 도리를 실을 수 있게 했으니, 뒷사람이 함부로 바꿀 수 없다. 이는 중국에서 문자를 만들어 써온 것을 아름답게 꾸며서 말한 것으로서 실제로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漢字는 甲骨文, 鐘鼎文, 大篆, 小篆, 隷書, 楷書, 草書, 行書를 거쳐 오면서 글자의 꼴과 뜻에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그리고 漢字는 끊임없이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져서 글자의 수가 몇 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둘째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리적 조건이 달라지면 그들의 소리도 따라서 달라진다. 그런데도 중국의 바깥에 있는 나라들 가운데 말소리는 있는데 글자가 없는 경우에 중국의 漢字를 빌려 쓰고 있으니, 이는 마치 둥근 구멍에 네 모난 자루를 끼우는 것과 같아서 어긋남이 많은 까닭으로 말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가 없다. 중국말과 말소리를 달리하는 점이 있는 말인 경우에 漢字의 말소리를 빌려서는 말을 글로 적게 되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중국말과 말소리가 같거나 비슷하더라도 漢字를 빌려서 말을 글로 적게 되면, 글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서 글을 배우고 쓰는 일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우리나라가 문화를 가꾸고 누리는 수준이 중국과 견줄만하지만 중국과 말이 같지 않은데도 漢字와 漢文을 쓰기 때문에 책을 배우는 이들은 뜻을 깨치는 일이 어렵고, 죄인을 다스리는 이들은 섬세하게 사정을 밝혀서 적는 일이 어렵다. 이는 맞는 말이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史官은 임금과 신하가 주고받는 한국말을 모두 한문으로 번역해서 적어야 했다. 史官에 뽑히려면 漢文에 매우 능숙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귀로 듣는 한국말을 있는 그대로 적지 못하고, 대충 번역해서 그렇고 그런 말로 적어야 했다. 이런 말을 바탕으로 사초를 정리하고, 승정원일기나 왕조실록을 만들었으니 문장이 거칠고 범범하게 흐르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삼국시대에 吏讀가 만들어진 뒤로 관청이나 민간에서 이제까지 써왔는데, 漢字를 뜻과 소리를 빌려서 하게 되니, 사람들이 나날이 주고받는 말을 그대로 적는 것은 만 가지 가운데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1443년 겨울에 세종대왕이 정음 28자를 만들고, ‘훈민정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漢字와 漢文을 배우고 쓰는 일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漢字를 빌려서 한국말을 적는 吏讀는 더욱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들은 吏讀가 필요해서 배우고 썼지만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에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글자를 만드는 생각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다섯째, 세종대왕은 사물의 꼴을 좇아서 글자를 만들었는데, 글자의 모양은 古篆을 본떴다고 할 수 있다. 28자에 지나지 않지만 수많은 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어서 공부를 하고, 재판을 하고, 음악을 하는 일과 같은 것에서 사람이 말과 글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정인지는 세종대왕의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드높이 찬양하는 글을 끝에 덧붙이고 있다. 4-4. 위와 같은 ‘정인지 서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나랏말ᄊᆞᆷ이 중국에 달라 문자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ᆞㅣ”를 “우리나라는 말씀하는 것이 中國과 달라서, 文字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한 것이 ‘정인지 서문’의 맥락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김슬옹은 내가 풀이한 것이 ‘정인지 서문’의 맥락을 벗어나 있다고 말하면서 중국말과 한국말의 언어모순을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언어모순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4-5. 첫째, 김슬옹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맨 앞에 있는 ‘세종대왕 서문’과 맨 뒤에 있는 ‘정인지 서문’을 이어서 세종 서문 번역은 ‘정인지서’에서 자세하게 풀이해 놓았으므로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풀이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서문’은 먼저 쓴 글로서 그 뒤에 이루어진 일의 바탕이 되는 글이다. ‘세종대왕의 서문’을 바탕으로 삼아서 쓴 글이 ‘정인지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 앞뒤의 글을 두루 참고하라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 될 수 있지만. 세종대왕이 먼저 쓴 글을 정인지가 뒤에 쓴 ‘글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풀이해야 한다’라고 못을 박아서 말하는 것은 지나친 점이 많다. 둘째, 김슬옹은 이어서 말하기를 “그런데 선생님 번역은 ‘정인지서’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정인지 말대로 이 문장은 조선의 입말과 중국의 입말이 다른데 중국의 입말에 맞는 한자나 한문으로 적는 언어모순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뿐이므로 그런 의도를 살려서 최대한 간결하게 옮겨야 합니다.” 여기서 그는 정인지가 말하는 것의 핵심을 조선의 입말을 중국의 입말로 적는 것을 언어모순으로 말하고 있다. 중국의 입말을 적는 글자의 말소리를 가지고서 조선의 입말의 말소리를 글로 적는 것을 언어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순은 창과 방패의 관계처럼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어느 곳에서 방패와 창을 함께 파는 사람이 방패를 손에 들고서 “이 방패는 견고해서 어떤 창도 뚫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난 뒤에 창을 손에 들고서 “이 창은 예리해서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앞뒤기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은 말을 두고서 서로 모순이라고 말한다. 모순은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와 절대로 뚫는 창처럼 이쪽 말이 맞으면 저쪽 말이 틀리고, 저쪽 말이 맞으면 이쪽 말이 틀리는 말을 가지고서 한꺼번에 둘 다 맞다고 말하는 것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이런 것에 비추어서 중국의 입말을 적는 글자를 가지고 조선의 입말을 적는 것을 언어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한국사람은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입말을 적는 글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서 한국의 입말을 적는 일을 꾀해왔다. 향찰, 이두, 구결 따위로 일컫는 것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는 한국말을 글로 적는 일을 잘 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잘 해낼 수 없는 방법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 애쓴 것에 비해서 거둔 열매가 적었다. ‘정인지 서문’은 이런 것을 두고서 ‘둥근 구멍에 네 모로 된 자루를 끼우는 일과 같아서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억지로 하면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향찰, 이두, 구결과 같은 것을 만들어 쓴 이들이 언어모순에 빠진 것은 아니다. 중국의 입말과 한국의 입말에서 말소리는 모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합 관계에 있다. 중국의 입말과 한국의 입말은 말소리가 서로 부합하는 것도 있고,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도 있어서 그냥 그대로 빌려다 쓸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훈민정음>에서 한국말 ‘ㄱ’의 말소리를 ‘如君字初發聲’이라고 하고, 한국말 ‘ㅏ’의 말소리를 ‘如覃字中聲’이라고 한 것은 부합 관계에 있는 것을 빌어서 한국말 말소리를 풀이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입말과 한국말 입말의 말소리가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부합할 수 있도록 고쳐서 맞도록 해야 쓸 수 있다. 예컨대 한국말 ‘돌’에서 볼 수 있는 ‘ㄹ’은 중국의 입말에는 나오지 않는 말소리인 까닭으로 한국사람은 ‘乭’이라는 글자를 만들어서 ‘돌’을 ‘乭’로 적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는 일은 구차한 일이면서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게 되었다. 중국의 입말은 한국의 입말에 비해서 말소리의 수가 적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사람이 중국의 입말의 말소리를 가져다가 한국말을 적으려면 새로운 말소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반면에 중국사람이 한국의 입말의 말소리를 가져다가 중국말을 적으려면 한국의 입말의 말소리를 조금만 고쳐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것은 한국의 입말과 일본의 입말의 말소리를 비교해보아도 잘 드러난다. 한국의 입말의 말소리를 가져다가 일본말을 적는 것은 매우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에 일본의 입말의 말소리를 가져다가 한국말을 적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 곳곳에 널려 있다. 5. 글을 마치며 글을 쓰다 보니 매우 길어졌다. 함께 묻고 따지자는 뜻에서 쓰기는 했지만 크게 흥이 나는 글은 아니다. 훈민정음 말소리 차림에 대해서 글을 쓸 때, 좀 더 낫게 고쳐보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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