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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2(11:22)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ㅠ한짐 (yhanjim@chollian.net)	조회수 : 29916 , 줄수 : 81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의 우리말 논쟁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와 박노자의 '오염된' 문장

고종석은 우리말의 역사를 외래어 감염사라 했다.
인류문화의 역사는 곧 감염의 역사이고, 그 문화를 실어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다. 언어는 다른 세계와 만나면서 풍부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모든 언어는 혼혈이며, 순수한 언어란 없다. 갇혀 있는 언어는 이미 죽은 언어이다." (고종석, 『감염된 언어』표지글)

고종석의 이 문장은 너무나 자명해서 달콤 쌉싸름한 맛을 남긴다. 국어에 대하여 남다른 발언권을 갖고 있는 그가 '감염된 언어'를 끌고 나와 문장의 말세가 가까이 와 있다고 혹세무민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옳은 소리를 했지만 틀려 먹었다.

"나는 이른바 토박이말과 한자어가 마구 섞인 혼탁한 한국어 속에서 자유를 숨쉰다. 나는 이른바 토박이말과 한자어와 유럽계 어휘가 마구 섞인 혼탁한 한국어 속에서 자유를 숨쉰다. 나는 한문투로 휘어지고 일본 문투로 굽어지고 서양문투로 닳은 한국어 문장 속에서 풍요와 세련을 느낀다. 순수한 토박이말과 토박이 문제로 이루어진 한국어 속에서라면 나는 질식할 것 같다."

명민한 그의 말놀이. 그러나 문장에 대한 거대서정은 맘에 걸린다. 말의 혼탁을 걱정하는 나를 고종석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박해', '혼혈인 혐오', '북벌정왜의 망상', '장애인 멸시'와 지척에 있다는 것을 쉽사리 증거하진 못하리라. 나는 위의 문장을 대하고서만큼은 고종석에게 실망어린 현기증을 느꼈다. 정작 그는 '휘어지고 굽어지고 닳은' 혼탁한 문장을 버무려 내지 않는다. 그것이 좋은 문장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자랑하기 위하여 순백의 언어를 걸고 넘어졌다. 그러나 고종석이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말로 글을 썼을 경우는 토박이말 모락모락 피어나는 순백의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참방참방 데불고 놀 때였지 않았나. 보라. 고종석은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말로 글을 쓰고 싶다'고 해놓고서도 더욱 품격 높은 글로 가기 위해 필요한 -적자 글인생을 아직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고종석의 문장에도 여느 지식인 못지 않게 모국어의 풍요로움보다는 -적(的)자투가 불필요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나는 고종석이 그의 문장에서 -적자만 간추려 빼도 그의 희망사항에 훨씬 한 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좀 더 욕심을 내면 -의를 줄이고 -등을 없애면 훨씬 볼품 있는 문장을 지어낼 수 있을 것이며 그 자신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문장독본일 수 있으리라. 감염된 언어는 스승 복거일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불안하다.

고종석이 옹호한 불순함에는 감염된 문장까지를 포함한다. 고종석은 감염된 언어관으로 자신의 문체를 두 현란-정신이 어수선함과 눈부시게 빛나고 아름다움- 사이에 정박시키고 있다. 고종석의 문장에는 "부분적으로 그 차이는 본디부터 있었던 방언적 분화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로는 인적 교류가 거의 없었던 두 이질적 체제의 구축 과정을 반영한 것이다"와 같은 문장이 흔하게 발견된다.

좋은 문장은 정확성이 우선이다. 부정확한 문장은 독자들을 괴롭힌다. 고종석의 문장도 -적자가 뼈대를 이루고 있다. 고종석을 따라하면 감염된 문장에 오염된다. 그는 '감염된 언어'로 문장놀이를 즐길 것이 아니라 그 자신 혼탁한 문장교본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고종석은 '감염된 언어'로 그를 즐겨 읽는 독자들의 문장 한줄 바꾸지 못하고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자의 전형이라는 사실만 겨우 얻었다.

고종석의 독실한 독자로서 고종석의 잡스런 문장에서 자유를 느끼진 못했다. 고종석의 글이 꽤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그가 정확하고 아름다운 말로 글을 쓰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닐 터이다. 독자는 잡탕말로 완공된 문장에 매료되지 않는다.

고종석은 부정확한 언어를 홀가분하게 버려야 한다. 그의 언어철학이 지지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문장은 타락할 것이다. 감염된 언어론의 고종석은 잘못된 문장강학이다. 선생이 바뀌지 않으면 학생들은 바뀌지 않는다. 그의 '감염된 언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문장가 고종석 자신으로부터 실격 판정을 받아야 한다. 고종석이 잊지 말아야 것은 '순화'의 충동이란 '죽임'의 충동이란 사실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편리를 위한 문장질서론이라는 점이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기로 유명한 문화신동(?) 이어령 선생-그의 정신은 아직도 유치찬란하다!-은 '적이라는 말꼬리'에서 '적'자 지식인론을 예리하게 꼬집었다.

"적(的)이라는 말꼬리부터가 말썽이다. '적'자는 현대문명이 낳은 거룩한 사생아며 그만한 이유로 약간은 기형적인 놈이다. 이 '적'은 아무 말에나 붙어 다니면서 모든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어놓는다. 여자의 심심한 앞가슴에 체면 유지로 붙어 다니는 브로치처럼 좀 고귀한 기생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아무데나 이 편리한 '적'자의 연막을 쳐서 자기의 '유식'을 보존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的'(적)으로 이야기하는 인텔리들에게서 이 말을 빼면 남는 말이 별로 없을 정도다.

이쯤 되면 '적'이라는 말은 뜻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 된다. 액세사리가 된 언어-참 눈물틱(?)한 일이다." <이어령, 「한국 말의 묘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국의 지식인이 희대의 웅변꾼 동반장을 닮아가고 있는 것은 무척 씁쓸한 일이다. 여기에 우리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문사 고종석이 깊숙히 연루되어 있어 참담하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넘어서 노여움으로 다가온다. '감염어'야말로 죽임의 충동이다.

"우리 반원이 인간적으로 친밀적으로 생활하려면 안면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협조적인 정신을 발휘해서 모든 것을 타협적으로 상의적으로 해나가면 모든 일이 능률적으로 되니까 일이 육감적으로 되지 않는다." <이어령, 「한국 말의 묘미」>

박노자의 경우는 오염된 한글에 감염된 경우다. 사실 한글운동가들도 오염된 문장을 쓰고 있는데 귀화한 박노자 교수에게 모범문장가이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인지 모른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상하는 없다>로 우리 곁에 찾아온 이 대단한 한국인은 고종석식으로 말하자면 감염된 세계인이다.

박노자의 글을 보면 군데군데서 입이 쩍 벌어진다. 이건 완전한 경탄감이다. 왜 "나이도 어린 것이 대단한 식견을 가졌네"하는 생각이 없겠는가. 이런 싸가지 없는 생각은 토종병이니, 이건 교양부덕이 아니라 풍토병에 가까운 몸성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다만 박노자 교수가 다른 한국인을 통해 문장을 배웠더라면 훨씬 좋은 세계인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노자의 미완성은 비틀어진 우리말글의 문제점으로 환원된다.

박노자 교수도 여느 외래인 못지 않게 한국어선생을 잘못 만났는지, 문장교본을 잘못 집었는지 '당신들의 문장'을 흉내내고 있다. 박노자의 글을 읽으면 좋은 한글 선생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가 우리말글 지킴이들로부터 글을 배웠더라면 훨씬 좋은 세계인의 문장교본일 수 있었으리라.

그의 글에서 발견되는 '감염된 문장'은 외국인 차별하는 살벌한 공장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노동자의 언어습득 과정과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온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욕부터 배우고 그는 잘못된 문장을 배웠다. 자꾸자꾸 어디선가 잘못 배워서 저런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면 근본이 제대로 서지 않은 한글교육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이 저며온다.

물론 "박노자 글이 뭐가 어땠어?"라고 따지고들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은 한국인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으나, 박노자의 글인생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본다. 나는 우리시대의 스승이 된 박노자 교수에게 이번 방학 때 날을 잡아 우리시대의 젊은한글 선생 최종규나 히딩크가 만난 마지막 한국인 노나메기의 백기완 선생을 꼭 만나 일그러진 자신의 문장을 바로잡고 토박이말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글은 깍고 다듬는 참 힘든 노동일이다. 정 시간이 없으면 한겨레에서 연재하고 있는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라도 꼼꼼하게 챙겨보기 바란다.

여태까지 글을 쓰면서 내가 꼭 피하려고 하는 말은 -등, -의, -적,-로서의, -에서의, 남발하는 -'것이다'였다. 정확하고 아름다운 우리문장에서 이런 말들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나는 앞으로도 이놈들을 웬만하면 문장 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을 생각이고 가까이 하지도 않을 참이다. 이 원칙은 문장의 기초에 속하는데 박노자의 글에서도 우리말글 바로잡이들이 지적하는 잘못된 표현들이 다량 발견된다.

이대로, 박노자 교수를 감염된 한국인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나는 박노자가 우리문장을 능수능란하게 쓰게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하여 박노자, 당신 문장 앞에 서면 한국사람들이 주눅들게 해주세요! 틈만 나면 제주도를 영어공용화 사바로 만들려는 나리나리 개나으리들은 외국인의 한글교육에도 열정을 보여주기 바란다.

한국인보다 글을 잘쓰는 박노자 교수만도 못한 대다수 외국인들의 한글습득 과정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으악"이다. 영어로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들은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땅은 한글로 번영하라는 팔자소관을 타고났다. 망할 때는 영어로 망하라는 팔자소관인지도 모르겠다. 제 운명에 충실한 어문정책이 그립다.

대한민국에서 꽤나 글발 날리는 논객들을 채집하고 있는 새뚝이칼럼방 쥔장은 문림의 고수 가운데서 문장에 관한한 손석춘의 동생이기로 했다.

하니리포터 서태영 기자 rangkae@hanmir.com

편집시각 2002년07월22일09시45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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