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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14:27)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이오덕>한길사>김민영>누리	조회수 : 4767 , 줄수 : 48

1. 이야기글의 역사

말의 민주화(1)

1. 이야기글의 역사

이 땅에 그 여러 천년의 긴 세월에,
우리 겨레 말의 주인은 바로 농민들이었다.
농민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의 이름을 짓고,
산과 내의 이름을, 마을의 이름을 지었다.
풀과 나무의 이름도, 짐승과 벌레, 물고기의 이름도 지었다.
농사를 짓는 데 쓰는 여러 가지 연모의 이름도 지었고,
일을 할 때 필요한 말, 일을 하면서 느끼는 괴롭고 즐겁고
슬프고 답답한 마음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말을 지어서 쓰고,
사랑과 미움, 소망과 절망 등 온갖 마음을 말로 나타내었다.
이 모든 농민의 말은 우리 겨레의 말의 바탕이 되고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농토를 많이 가지고 사람을 부려서 사는 이들과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삶이 서로 갈라지게 되고,
농사일을 하지 않는 양반 계층들이 남의 나라 글자인
한문을 받아들여 그것을 쓰게 되고부터는
우리 말이 한문의 영향을 크게 입어 변질하게 되었고,
우리의 글자인 한글을 창제했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양반들이 쓰는 중국글자말과
중국글자말투의 말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은 우리 말 사전에 실린 전체 낱말의 6-7할이
중국글자말로 되어 있는 형편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부터는 일본말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 일본말에도 우리 말은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이 일본말은 중국글자말을 마구잡이로 가져와
우리 말의 숨통을 틀어 막았다.
지식인 계급은 일본 말글을 전파하고 일본 말법으로
우리 말글들을 병들게 하는 데 앞장섰다.
우리 말은 ‘해방’의 날 8.15부터 중국글자말과
일본말에 겹쳐서 또 하나 서양말의 수난을 받았다.
농민의 말이요 백성의 말인 우리 겨레의 말과 글은
남의 땅에서 들어온 중국글자말과
일본말과 서양말에 시달려 '삼중고'의 병신으로 앓고 있다.
우리 말글이 앓고 있는 모습이 바로 우리 백성들이
앓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 말을 살리는 문제는 우리 백성을 살리는 문제이다.
나는 여기서 지식인들의 커다란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글 바로쓰기 1
이오덕 지음, 한길사, 1992. 03
253-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