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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널리.알림

2020/02/21(15:42)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최봉영	조회수 : 2199 , 줄수 : 153

《이런 식은 안된다 : "같잖다"의 말뜻》

나는 이어령 선생이 한국사람들이 나날이 쓰는 말을 글감으로 끌어다가,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것을

중학생 시절부터 따라서 읽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것은 "바람이 불어 오는 곳",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물레야, 물레야"와 같은 것들이다.

그 뒤로 나는 이어령 선생의 글이나 말을 읽거나 들은 것이 어언 55년이나 되었다.

나는 풋내기 시절에는 학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마땅히 이어령 선생처럼 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이어령 선생은 이화여자대학에서 정년을 맞고서도, 석좌교수로 남아서,

오래 동안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학자라고 불러왔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학자의 본보기와도 같았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어서, 학문을 본업으로 삼아서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하게 되면서, 이어령 선생이 하는 일은 학자가 학문으로써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또렷이 알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은 이리저리 여러 가지로 폭넓게 생각한 것들을 가지고서,

요모저모로 맛깔스럽게 글을 잘 쓰는 뛰어난 수필가 내지 문필가이다.

이어령 선생처럼 맛깔스럽게 글을 잘 쓰는 뛰어난 수필가나 문필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일이다.

이런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 땅에는 오천석, 법정스님, 안병욱, 김형석과 같은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어령 선생은 다른 수필가나 문필가와는 다르게,

한국사람이 나날이 쓰는 말을 글감으로 삼아서,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거창한 이야기를 주로 해왔다.

그는 이와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어떠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한국사람의 삶과 생각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끌고다니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사람들은 그를 뛰어난 수필가나 문필가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대단한 석학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어령 선생이 한국사람이 나날이 쓰는 말을 글감으로 삼아서,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것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이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글의

소재로 삼는 말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가지고서,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풀어내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어령 선생은 이런 일을 많이 해왔다.

나는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학문의 바탕을 두고서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어령 선생이 한국말의 뜻을 깊고 넓게 살피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대해서 그릇되게 이야기해놓은 것을

바로잡아 보기 위해서, 나름으로 많은 것들을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우연히 친구의 페북을 읽다가,

이어령 선생이 또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다시 나름으로 이것에 대한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에 대해서

크게 잘못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있는 인터뷰 글을 보면,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이어령 선생에게 오늘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제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일에 대해서 묻자,

이어령 선생은 서양은 일찍부터 차이에 익숙한데,

한국은 합쳐지는 것만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차이에 익숙하지 않다는 논리를 펴면서,

이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로써, 한국사람들이 나날이 쓰고 있는

"같잖다"라는 말을 증거로 삼고 있다.

그는 한국말에서 "같잖다"라는 말을 "나와 같지 않다"는 뜻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한국사람이 "같잖다"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풀이는 참으로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한국말에서 "같잖다"라는 말은 "같지 않다"는 말을 줄인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두고서, "같잖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

한국사람은 "사람이 사람답게 되어야 사람이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 또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사람 같잖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런 사람을 두고서 "같잖다"라고 말한다.

만약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같잖다"는 말이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면,

한국사람은 모두다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유아(幼兒) 단계에서 볼 수 있는 자기중심도덕성(Ego centerism)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다.

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

한국사람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생각을

갖고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

"사람이 된 사람", "사람 같은 사람",

"사람과 비슷한 사람(近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까닭으로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도 사람이라는 보편적 잣대에 맞추어서

사람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사람이라는 보편적 잣대에 크게 미치지 못할 때에

그러한 사람을 두고서, "같잖다"라고 낮추어서 말한다.

이러한 바탕을 모르고서, "같잖다"를 "나와 같지 않은 사람"으로 뜻을 풀게 되면,

이것은 한국사람과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모두 그릇되게 알도록 만드는 일이다.

이제는 이런 식으로 한국말을 끌어다가 한국사람과 한국문화를

어설프게 풀어내는 일을 그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