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2020/08/01(09:10)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강진모 조회수 : 297 , 줄수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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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을 피하여 다리 밑에 내려가 발을 담그고 있는데, 뭔가 발목을 간지렸다.
배가 고픈 송사리려니 하고 내려다 보았더니 커다란 잉어였다.
나는 자라는 식물처럼 천천히 움직여 잉어의 아가미를 움켜 쥐었다.
그런데 잉어는 달아나려고 하지 않았다.

잉어를 잡은 것을 본 그녀는 환호했다.
으쓱해진 나는 물 밖의 잉어가 오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절시키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잉어의 아랫도리를 잡고 머리를 바닥에 내리쳤다.
그랬더니 잉어는 중국 백자기 골통품처럼 깨지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 불쌍한 것!'이라고 말했다.

딸아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어린 고양이를 괴롭히는 이웃집 고양이가 집안까지 처들어와 딸을 격분시켰다.
그날밤도 우리 고양이는 비명을 질러 우리들을 깨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우리 고양이에게 구애하는 이웃집 머스마였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 든다.)

침입한 고양이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나는 바깥으로 나가 고양이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는 침입자의 버릇을 고쳐주려고 긴 막대로 고양이를 코너링하였다.
그러자 고양이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고양이라도 된다는 듯 슬프게 울었다.
그 순간 그 고양이를 그처럼 미워하던 딸아이는 아 불쌍한 것!
(O, die arme!) 하고 말했다.

(나는 그때 아이의 심성이 무척이나 착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내 곁의 그녀는 딸아이라는 걸 알았고,
이 에피소드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나는 잉어를 담을 비닐봉투같은 것을 찾았다.
벽돌 아래 비닐같은 것이 보였다.
그것을 끄집어 내었더니 온갖 살림살이가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잉어가 달아나지 않고 내 손에 거의 안기듯 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잉어는 다리 밑에 사는 노숙자의 애완동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비닐봉지를 제외하고는 세간살이들을 다시 원래대로 덮어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복잡한 지하구조를 통하여 (에레미타지) 미술관으로 돌아나오려 하는데
철창으로 막혀 있었다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고 있는데 자원봉사자가 나타나
'이동용 접수창구'를 들이대며 스맡폰을 그곳에 올려놓으라고 하였다.
딸아이는 스맡폰 대신 전자시계를 올려 놓았다.
덩치가 큰 자원봉사자는 묵인해 주었다.
자원봉사자는 중세의 수도사처럼 후드를 덮어쓰고 고개를 숙인 채,
우리를 다시 수도원 미술관으로 돌아오도록 도와 주었다.
나는 그가 다리 밑에서 노숙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배낭 속에는 그의 애완동물의 일부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가 친구 보증을 잘못 서서 퇴직금을 날리고 다리 밑에 사는
착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빈부격차가 폭증하여 빈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지자,
자본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빚의 경제'이다.
빚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뻔뻔한 사람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우선 빚 부터 갚아야 된다는 착한 사람들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도태된다.
자원봉사자는 바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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