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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20:18)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한재준	조회수 : 3276 , 줄수 : 156

광화문 현판을 다시 바꿔야 하는 이유

.

1.
시민들은 베껴서 그린 죽은 글씨를 당장 떼어내라고 하는데, 문화재청은 여전히,
‘복원 원칙에 따라 고종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으로 결정’ 했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정부기관의 무책임한 대응이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가치창출로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해야 할 문화재청이
불에 타서 없어진 현판 글씨를 손톱만큼 작고 흐릿한 사진을 근거로 내세우면서
지금의 광화문 현판 글씨를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문화재의 가치를 깍아내리고 있다.

지난 2006년에 대한민국 정부는 ‘광화문 제 모습 찾기’라는 선포식과 함께
전 대통령 박정희의 광화문 현판 글씨를 떼어냈고,
2010년에는 ‘제 모습 찾은 광화문’이라는 거창한 행사를 하면서
지금의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 한자 현판을 내걸었다.
마치 원형을 복원한 것처럼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내용을 아는 시민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가짜 현판임을 반박해 왔다.
결국에는 엉터리로 복원한 현판이 석 달 만에 갈라졌고 두 번이나 땜질해서
걸려있는 것이 지금의 현판이다.
이런 과정에서 관심과 논란은 현판과 글씨의 색깔 문제로까지 불거졌고,
문화재청은 다시 검정 바탕에 금색 글씨 현판을 준비했다고 한다.
2019년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올해인 2020년 중에 새로 만든 현판을 다시 걸겠다고 했다.
미국 박물관에서 찾아낸 엽서 크기 사진과 일본에서 찾았다는 경복궁 영건일기가
또 다른 새로운 근거라고 하는데, 베껴그린 글씨에 색깔을 바꾼다고
원형 없는 글씨가 되살아 날수 있을까?

2.
문화재 원형이 불에타서 완전히 없어졌다면, 없어진 상태를 그대로 두거나
꼭 필요하다면 재현을 하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 상식이다.
꾸며서 만든 것을 ‘복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화재 보존에 어긋나는 태도이다.
복원은 원형의 일부가 남아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문화재청도 당연히 이런 상식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박정희의 글씨가 잘못된 것이라고 떼어내었을 것이고,
현판 글씨를 새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도 문화재청이었다.
그런데, 갈팡질팡 방향을 제대로 못찾고 있으니,
시민 단체가 앞장서서 제대로 만들어 달자는 운동을 펼쳐 온 것이다.
이 운동은 2005년 이후에 본격화했고,
더 나은 현판, 한글 현판, 훈민정음체 현판으로 방향을 더 구체화했다.
이런 과정에서 문화재청은 여론 조사, 토론회, 공청회를 진행했고,
2012년 국민 여론 조사 결과로는, 한글(58.7%)이 한자(41.3%)보다 앞선 선호도를 보였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지금의 현판 글씨를 고종 때의 서사관 임태영 글씨라고 주장하면서,
마치 이 글씨가 원형인것처럼 어물쩍하면서 내건 것이 오늘의 현판 글씨이다.
논쟁의 핵심인 원형 글씨 여부 문제는 없던 일로 무마해 버렸고,
한글과 한자의 싸움에서 한자가 이긴 것처럼 포장하고 말았다.
문화재청은 복원 원칙을 따랐다고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원칙은
일관성도 없고 공감하기도 어렵다.
지금의 현판은 원형 복원이 아니다.
재현이라고 표현해도 미흡한 점이 많다.
문화재청이 원형인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사진 속의 현판도 지금 달아놓은 현판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문화재청의 광화문 현판 바꾸기 과정을 다시 돌아보면,
2005년에는 ‘퇴계, 추사, 한석봉, 정조대왕 등 선현의 글씨를 집자하는 방법’까지
스스로 거론했고, 2011년에는 당대 최고 서예가에게 맡기자는 대안까지 있었다.
모두가 원형 글씨가 없었기에 내놓았던 대안들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작은 사진 몇 개를 내세우면서 그동안의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버렸다.
작은 사진의 글씨를 억지로 꾸며서 만든 것은 문화재 보존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재를 왜곡하고 변형한 행위이다.
지금의 현판 글씨가 원형을 복원한 글씨임이 분명하다면,
문화재청은 그 증거인 훼손 이전의 원형 글씨를 공개해야 한다.
만약에 원형 글씨가 없다면 지금의 글씨는 재현이라고 바로 표현하거나
새로 만드는 방향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지금의 모호한 글씨에 비하면, 시민단체가 주장해 온 훈민정음체 제안이
훨씬 더 지혜로운 방향이라고 본다.
훈민정음체야말로 법고창신하고 문화 창달한 대안이다. 한층 더 나은 방향이다.
시민들의 귀한 의견은 듣고도 못 들은 척, 국민을 무시해 온 문화재청의 관계자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훈민정음체 대안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다면 그 방안을 가지고 국민과 대화하라.

3.
훈민정음체의 가치는 새기고 살릴 내용이 너무도 많지만,
그중에 하나만 다시 돌아보자. 깊고 오묘한 천지인 어울림 뜻이다.
하늘·땅·사람, 온 세상이 잘 어울려야 널리 이롭다는 생각이다.
자모 조합 원리에서도 그 뜻이 육감을 넘어 전해온다.
하늘을 상징했다는 작은 점이 별처럼 또렷하다. 한때는 하늘 꼴로만 알았는데,
또한 중성의 으뜸 꼴이 아닌가?
초·중·종성의 조합 이치로 풀면, 하늘이 사람이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600년 전에 경복궁에서 태어난 훈민정음은
이제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에 퍼지고 있다.
불통하던 세상을 소통으로 바꿔가면서 말이다.
광화문이라는 이름도 세종 때에 지었고, 경복궁의 면모도 세종 때에 갖췄다.
큰 덕을 밝게 비춘다는 광화의 뜻도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이어져 있다.
경복궁은 옛 조선의 정궁일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터전이고 어머니의 품,
한글에는 고향 집 같은 곳이다.
광화문만이 아니라 경복궁의 건춘, 영추, 홍례, 일화, 월화문의 이름까지도
모두 세종 이도의 명으로 집현전에서 지었다.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 10월 26일 병술 3번째기사) 그렇다고해서
시민모임이 이 모든 문을 훈민정음 꼴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의 모든 문을 한글로 바꾸자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광장, 민주의 이름으로 커가는 광화문의 현판이기에
“광화문만큼은"이라는 표현으로 더욱 절절하게 외치는 것이다.
경복궁의 대문, 대한민국 대표 광장의 상징문, 이 문 이름을
맨 처음 한글 꼴인 훈민정음체로 새겨 달자는 제안은 어느 모로 봐도 잘 어울리는 탁견이다.
그래서 다시 강조한다.
시민 정신을 깨우는 이 운동의 취지에 적극 동의한다.
모호한 복원 원칙만 앞세우면서 국민의 간절한 요청과 의견을 무시하는 모든 권위에 저항하겠다.
진정한 광화의 뜻을 함께 살려내자고 더 많은 시민들께 호소하겠다.

4.
문화재청은 ‘원형 복원 원칙에 맞게 고종 중건 당시로’를 불변의 원칙처럼 고수하고 있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광화, 건춘, 영추, 신무문 등의 현판은 고종 중건 때에
각각 서사관 임태영, 이경하, 허계, 이현직이 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건춘문과 영추문의 현판은 이미 1960~70년대에
일중 김충현 선생이 새로 쓴 글씨이고, 아직은 다시 바꿔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강녕전, 용성문 등의 편액도 고종 대 이후에 새로 쓴 글씨이다.
경복궁을 고종 중건 당시로 되돌리겠다는 문화재청의 기본 원칙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경복궁의 모든 문화재를 고종 때로 되돌려야 할 근거나 이유는 충분치가 않다.
문화재의 특성에 따른 균형 잡힌 복원 원칙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재청 스스로 보완한 “세종 때의 우수한 과학 문화재 재현”도
그런 의도와 배경이었을 것이다.
2009년에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의 수리복원 및 관리에 관한 일반원칙>에서도
“복원은 고증에 의해 충분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 역사,
문화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라고 규정했다.
재현과 복원은 명확히 구분해야 하고, 충분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복원은 바로 멈춰야 한다.
또한, 글씨와 건축물의 복원 원칙은 달리 적용해야 마땅하다.
글씨는 건축물과 성격이 다르다.
도면도 탁본도 없는 글씨를 작고 흐릿한 사진 몇 장으로 복원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글씨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부당하고 난감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다.
잘 알고 있듯이, 훈민정음도 세종 때의 우수한 과학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시민 단체는 광화문 현판의 원형 글씨가 불에타서 없어졌으니 새로 만들자는 것이고,
새 글씨로는 훈민정음 해례본체가 가장 적절하다고 제안을 해 왔다.
옛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만들자는 뜻이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제안과 요청을 한자 배척이나 문화재 복원 방해 행위로 몰거나,
이해관계나 정치적인 문제로 악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바꾸자는 주장은 한자를 몰아내자는 운동이 아니다.
우리 문화의 깊은 뿌리를 되찾아 삶의 풍요를 누리자는 운동이다.
지금의 저 어설픈 현판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재논의조차 어려웠을 제안이다.
부디, 하늘이 주신 기회로 알고, 국가와 주권과 문화 예술의 가치를 함께 나누는 대토론의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함께 잘 살아보자.

2020년 7월 24일~9월 30일

•이 글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학술대회 19 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더 많은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듬어갈 예정입니다.

•한재준(2020). 광화문 현판과 훈민정음 꼴.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학술대회 19 & 총회. <발언>. 자료집 14~15쪽.
주최: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주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때: 2020년 7월 18일(토),
곳: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예술복합연구동 74동 2층 오디토리움 & 유튜브 실시간 스티리밍

참고 자료

•http://www.ziksir.com/ziksir/view/3031ㅇ http://www.ziksir.com/ziksir/view/3031

•http://blog.daum.net/leepansoo/8637453 (코넬대학교 도서관 사진 포함)

•https://www.cha.go.kr/newsBbz/selectNewsBbzView.do;jsession
id=prqDKCtDlGGZVqa03gcv3ZD77mBnyfp6FMTrKUVtsRj18OlAyXd0ASS1lWNnOQJP.cha-was02_servlet_engin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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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IwAR0_zBuIsHdNLjuU6TypjJ2RdHQaC8o1FSiDMw1IHMrpO6fmM80qMmw7Zik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 10월 26일 병술 3번째기사 1426년 명 선덕(宣德) 1년.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다.
집현전 수찬(修撰)에게 명하여 경복궁 각 문과 다리의 이름을 정하게 하니,
근정전(勤政殿) 앞 둘째 문을 홍례(弘禮), 세 번째 문을 광화(光化)라 하고,
근정전(勤政殿) 동랑(東廊) 협문(夾門)을 일화(日華),
서쪽 문을 월화(月華)라 하고, 궁성(宮城) 동쪽을 건춘(建春), 서쪽을 영추(迎秋)라 하고,
근정문(勤政門) 앞 석교(石橋)를 영제(永濟)라 하였다.【태백산사고본】 11책 34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