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2021/01/06(11:50)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금누리 조회수 : 1191 , 줄수 : 74
공간.60.해 ... 그리고.나

1965 해
나 어릴 때 강나루 지나 아차뫼길을 천천히 걷고 걸었다.
한강을 등지고 위로 오르는데 언덕마루에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끝없이 넓은 모래밭 위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커다란 겹친 세모꼴,
어린 눈에 가장 크고 든든한 덩어리가 푸른 언덕 위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거꾸로 뒤집혀 서있다.

그때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때렸다.

그림비(화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 한때 집멋마련비(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오늘 멋질비(미술가)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때 만난 김수근님의 멋짓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수근의 공간이 어린 나의 꿈을 새로이 한 것이다 ...



1978 해
나 젊은 때 김수근님이 첫 학장이던 국민대조형학부 건축과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가르치기보다는 배우미들과 함께 그리거나 만드는 놀이를 한 것이다.
그곳에 있던 내방은 쓰레기더미처럼 온갖 것에 둘러싸인 놀이터와 다름없는 배움터이다.
그때 큰스승 김수근님은 위에서 넓고 깊게 보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새로운 가르침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1987 해
공간미술관에서 ‘금누리조각전’을 가지다.
그때 만든 내 멋질집은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지니고 있다.
살펴보자면 이때 새로이 펼친 나의 멋질들도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1996 해
국민대조형대학 스승들과 배운이들이 뜻을 모아 김수근님을 기리는 멋질을 세우기로 하였고,
그 일을 나에게 맡겼다.
그 때 나의 몸은 좋지 않았으나 나는 무엇 보다 그의 얼이 담긴 그의 모습을 온 마음을 다하여 빚어 세웠다.
그 일을 하며 집멋마련비 장세양님을 새로이 다시 만났고,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몇 살 위인 그와 멋질비로서 만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밤 지새는 술벗으로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김수근님을 이어 10 해가 넘도록 공간을 더 이끌어 온 그는 새로운 집멋마련비이다.

그는 20 해 앞서 내가 만든 멋질을 보고는 옆얼굴이 김수근님을 꼭 빼 닮았다고 하여
나는 앞모습은 젊은 장세양을 닮은 셈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님들을 이어 공간을 새로이 이어오고 있는 이상림님이 돌아가신 장세양님을 기리는
얼굴을 세우고자 내게 맡겼다.
내가 빚어 세운 김수근님을 장세양님이 처음 본 날 옆얼굴이  꼭 빼닮았다기에
앞은 장세양님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그와 함께 나눈 말이 다시 떠올랐다.





2006 해
나는 기꺼이 장세양님이 마련그린 유리집 공간 가운데 기둥에 내가 만든 그를 세웠다.
그날 마당을 비질하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하는 말씀이
어쩌면 그를 그렇게 똑같이 만들었냐고 물었다.
나는 장세양님의 가슴에 부어 심어둔 빈 술병들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고맙다고만 하였다.

맑은 공간에 세운 장세양님을 김수근님 쪽에서 보면 그 느낌은 김수근님의 그림자로 보이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보신다면 가슴 속 술병들 그 공간에도 꽃이 피고 있을 것입니다.



공간, 그 공간을 알게되고, 공간과 함께 살아온 모든님들 참 고맙습니다.


7L21
-T
D

멋질비, 국민대학교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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