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2021/11/06(13:05)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고향갑 + 서용선 > 강진모 > 누리 조회수 : 2991 , 줄수 : 25
'난독일기'



우물속의 보름달을 향해 새댁은 몸을 던졌다
남북끄런 전쟁이 최후의 발악을 하던 겨울이었다
정전회담을 하는 장군들은 지렁이처럼 꾸물거리고
병사들은 참호속에서 눈사람이 되어가는 겨울이었다
형사들에게 시달리던 새댁이 남기고 간 한 짝의
하얀 고무신 옆에 할머니는 정신을 잃고 누웠다
만삭의 달은 두레박을 타고 우물밖으로 나왔다
신랑은 달그림자 밟으며 북으로 가고
새댁은 소달구지에 실려 남으로 갔다
새댁이 가마니를 덮고 고향에 왔을 때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빨갱이가 역병보다 무서운 시절
곡소리조차 담을 못넘고 마당을 기어 다녔다
새댁은 멍석에 말려 추억의 뒷산 뽕밭에 묻혔다
늙은이와 아낙네들만 구덩이에 코를 박고 울었다
소중한 것들을 지켜야 할 사내들은 끌려가고 없었다
잡혀가지 않은 사내들은 똥통 밑에 들어가 숨을 참았다
할머니는 대나무밭에 땅굴을 파고 아들들을 숨겼다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주먹밥을 만들어
요강의 똥과 물물교환을 하였다*

*고향갑의 '난독일기' 중에서, 그림 서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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