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2021/11/11(11:54)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 + 강진모 조회수 : 2937 , 줄수 : 33
베쓰



개들도 창씨개명이 되었다.
앞집개 이름은 도꾸였고 옆집개 이름은 베쓰였다.
베쓰는 이웃집 백구와 뒷집 누렁이 메리의 딸이었다.
백구의 이름은 쫑(John)이었는데 쫑은 똥개였지만 영물이었다.
우스개소리도 잘하던 이웃집 아저씨는 아버지의 고향친구였는데
자식들을 자주 때렸다.
그럴 때 쫑은 아저씨의 파자마를 물고 뒤로 끌어서 말리기도 하였고,
마당에 엎어진 아기가 울어 제낄 때, 아기의 저고리를 물어 일으켜,
동네에 평화를 돌려주기도 하는 놀랍개였다

나이가 많은 쫑은 서당개처럼 근엄하여서 개로 느껴지지 않는 개였다.
그러나 쫑의 딸 베쓰는 눈빛 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착하고 평범한 개였다.
베쓰는 언제나 황토색 털외투를 입고 다녔다.
삼복더위에도 털외투를 벗을 줄 모르는 베쓰가 엘리자베쓰의
줄임말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베쓰는 암튼 엘리자베쓰 테일러 만큼이나 예쁘개였다.
더구나 베쓰는 좀처럼 물거나 짖거나 하지 않는 착하개여서 동네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므로 베스가 집에 있을 때 나는 베쓰에게 많은 동네 아이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베쓰를 데리고 일단 동네를 벗어나면, 우리는 세상의 끝까지라도
함께 갈 듯한 단짝이 되었다.
나는 그 멋지개와 함께 장충단 공원을 지나 남산이나, 낙산 성터를 넘어
바위언덕을 바람처럼 쓸고 다녔다

낙산 언덕 꼭대기 초소 옥상에는 대공포가 있었고,
철판으로 만든 저수탱크도 있었다.
손바닥으로 때리면 세상에서 가장 큰 징소리가 나는 그 저수탱크를
두드리다가 집으로 돌아 오는데, 뒤에서 베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운 수키의 목소리였다.  
베쓰는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수키에게 달려갔다.
수키가 웃으면 뺨에 보조개가 파였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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