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2022/03/26(21:34)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강진모
조회수
: 3122 ,
줄수
: 41
만원버스
송곳을 꽂을 틈도 없었다
요금은 천원인데 만원을 내고
탄 것처럼 행세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남들의 발등을 밟고 다녔다
발등을 밟히고 화난 얼굴로 돌아보면
그들은 돌아와 당신의 발등을 밟고
종점까지 간다 당신의 행선지는
종점이 아니지만 발등을 밟혔으니
종점까지 가는 수 밖에 없다
때로는 그들이 반갑게 손인사를 하듯
손바닥을 들어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만원짜리 한 장을 주는 게 좋았다
손가락 사이에는 면도날이 끼워져 있었다
만원을 내지 않으면 당신의 양복 안주머니
바깥을 면도날로 그어 지갑 채로 가져간다
승객들은 모두 눈을 내리깐다
서서 자는 척 하는 승객들도 있다
놈들이 소녀들을 만져도 버스는 고요하다
버스에서 쫗겨나면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초현실적인 메타버스였다
버스가 산길을 돌아갈 때 그들은
여자운전사를 버스에서 끌어내려
욕정을 채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항의를 하다가 얻어 맞았다
여운전사는 항의한 사람이 내리지 않으면
버스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이 바쁘다는 승객들에 떠밀려 그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봄 산에는 꽃들이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버스가 구빗길을 내려가는 것도 보였다
만원버스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호수에 처박히는 것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