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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널리.알림

2023/11/01(03:37) from Anonymous Host
작성자 : ㅍ리다.캏로 > + 김정락 > 누리	조회수 : 1202 , 줄수 : 64

부서진.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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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건축사의 전범(典範)이 되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은
기둥의 형태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도리아(doria), 이오니아(ionia) 그리고 코린트(corinth)라고.

도리아는 그 이름의 유래를 찾으면,
아티카 지역에 자리 잡았던 도리아 민족에서 따왔다.
이오니아는 에게 해 동쪽 연안지역을 의미한다.

코린트는 펠레폰네소스에 자리 잡은 도시국가에서 유래했다.
이런 건축의 체계를 세운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이 세 종류를 성별로 구별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도리아는 남성,
이오니아는 여성 그리고
코린트는 소녀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서 고대의 신전들은 제우스나 포세이돈,
아폴로 등 남신에게는 도리아를
헤라, 아테네, 비너스와 같은 여신들에게는 이오니아 주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정적인 것도 규정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아테네 여신을 위해 세워진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도리아를 채용하고 있다.

이 고전건축의 기둥을 빌려와 자신의 정체성(혹은 척추)으로 삼았던
화가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다.

칼로는 살아생전 수많은 자화상을 그려냈다.
이 그림들만 모아도 자서전을 하나 꾸릴 수 있을 정도로 많다.
대개 평탄치 않았던 삶이 반영된 슬프고
외롭고 고통 받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비극의 전기가 되겠다.

작가는 18세 나이에 온 몸이 부서지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그녀는 인간으로서 삶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온전하고 행복한 삶도 힘겨운 운명에 처했다.
그래서인지 여러 자화상에는 신체의 고통을 노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부서진 기둥(The Brocken Column)>은
가장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가장 뼈 속에 사무치는 그림이다.

이 자화상에서 화가는 고통 받는 대지의 여신이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땅과 거친 바람이 이는 듯한
하늘 중간에서 그녀는 의료용 코르셋으로 부서진 척추를
- 여기서는 조각난 이오니아 기둥 - 지탱하고 서 있다.
그녀는 이 기둥으로 여신의 위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척박한 배경은 생산력을 잃은 대지 혹은
그러한 여성의 몸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온 몸에 가시처럼 박힌 못들은 사고 당시의 상처이거나,
그녀가 일상 중에도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짙은 일자 눈썹 밑에서 빛나는 두 눈은 슬프지만,
자존감만은 충만하다.
그 눈빛이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대는 나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가?”

※지난 토요일 불행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154명 젊은이들의 명복을 빈다.
사회를 떠받히는 기둥이 부서져 내리는 듯 하다.
벌어지지 말아야할 사건과 사고가 잦아지고 있다.
제발 이 참사가 다른 참사의 전조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