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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설치미술 현재 우리의 설치미술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전개되고 있다. 그야말로 온갖 양상의 설치미술들이 '범람'하고 있다. 대체로 다음 여섯 가지 유형이 분류될 수 있다. 물론 개별 작가에 있어서나 작품에 있어서나 한 두가지 이상의 유형이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 일상 삶의 문맥에 주목하되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통상적인 시각의 역전을 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유형의 작업들
2) 키취와 상품 등 대중 문화적인 시각물들로부터 유래한 이미지와 감성의 차용이 두드러지 는 유형의 작업들 3) 미술관으로부터 벗어나 바깥을 지향하는 다양한 유형의 작업들 4) 표현어법의 차원에서 기존의 장르 규범이나 표현양식의 한계를 되짚어 보거나 그러한 한계로부터 조심스럽게 새로운 어법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는 유 형의 작업들 5) 초보적이건 첨단적이건 테크놀로지의 활용이 두드러지는 작업들 6) 페미니즘이나 생태, 환경 등 주제의식이 두드러지는 작업들 첫 번째 유형의 경우 현재 가장 많은 작가들에 의해 선택 되고있는 대표적인 작업 유형이며,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2) 유형에서 (6)유형까지의 모든 작업에서 동시에 발견되기도 하는 작업 유형이다. 대체로 일상 삶에서 유래하는 기성품이나 이미지들 혹은 제작된 사물의 독특한 설치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역사, 신화, 사회현실의 배면, 일상 담론의 허실 등 다양한 삶의 문맥에 대한 경험에 대면케 한다. 80년대 민중미술이 삶의 현실에 주목할 것을 주장한 이후 기존주류 미술들의 형식주의에 반대하는 성향이 이들 작업들의 배면에 적지 않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업들에서 상대적으로 어법의 집중도가 약하고 문맥을 장악하는 작가들의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적지 않이 볼 수 있다. 설치가 방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양식으로 이해되었던 초기의 우리 설치미술의 이해가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우리의 일상 감각에 친근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유형의 작업들 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작품들의 수가 많은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두 번째 유형의 경우는 상품화된 현실의 여러 시각물들 중 상대적으로 자극적이며 혼재된 현실을 중층적으로 포섭하고 있는 사물들의 병치나 대조 등의 어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특히 눈에 띤다. 기존 주류미술의 고상함과 정신성에 혹은 민중미술의 이념성에 대비되어 잊혀지고, 무시되고, 억압받은 감성과 감각을 드러내되 감각 그 자체를 중시하는 지향이 두드러진다. 또한 이 유형의 경우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그에 대한 비판의 의도를 가진다고 하면서 실상은 이미지들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대중매체 이미지의 또 다른 반복에 그치는 경우의 작품들을 매우 많이 볼 수 있다. 즉 설치미술 또한 또 다른 의미의 미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때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설정이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의 작업들 역시 기존 주류미술의 미술관 중심의 작업들에 대한 저항의 성격 혹은 서민적 감성 같은 것이 적지 않이 엿보인다. 자연과 환경, 생태계에 대한 문제 제기나,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장소에 대한 관심 혹은 무속적이고 신화적인 연상대의 재구성 등의 시도가 눈에 띤다. 하지만 일회성이 특히 강조되는 이들 작업의 경우 언어 자체가 견고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적인 시도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이 눈에 띤다. 야투, 바깥미술, 콤아트 그룹 등의 사례가 있다. 네 번째 유형의 작업들의 경우는 70년대 이후 주류 미술을 이루었던 한국식 미니말과 개념 주의 양의의 작업들로부터 유래한 어법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가운데 기존의 장르 규범이나 표현양식의 한계를 되짚어 보거나 그러한 한계로부터 조심스럽게 새로운 어법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는 작업이 어딘가 '경험을 경험'케 하는 설치미술의 어법보다는 형식주의의 어법에 침윤되는 경향이 있다. 다섯 번째 유형의 작업들의 경우는 단순한 기계적 차원의 초보적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첨단적 테크놀로지를 미술에 적용할수록 그 적용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상투적인 패턴(자연물과 인공물, 자연과 인위의 대비)에 머무르거나 작가의 고안을 동반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테크놀로지의 시각적 효과만을 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테크놀로지의 가능성(특히 우리나라 상황에서의)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기 때문으로 보이며, 기술적 재정적 한계 때문에 자유로운 작업이 제약 받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섯 번째 경우는 아직은 페미니즘적인 주제의식에 입각한 작품들이 대부분인 듯하다. 하지 만 그 어법들이 충분히 다양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서구 페미니즘 미술의 어법을 활용하는 예 가 맡은 듯하며, 아직 스스로의 메시지 전달의 통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주제의식에 작품이 함몰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아직 우리의 설치작업은 여러모로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 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가 볼분명한 작픔들이 적지 않다. 사진, 컴퓨터, 테크놀로지 등 새로운 매체를 사용하는 경우 우선 매체 자체에 대한 기술적 숙련 내지는 각 매체 자체의 공유성과 차이, 그것의 활용 가능성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미술관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인 지역과 일상 생활공간에 개입하여 공공적인 참여와 소통을 꾀하는 유형의 작업들(설치미술의 가장 긍정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는)이 거의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의 경우 설치미술의 기반을 형성케한 조건들이 서구에 비해 상 대적으로 뒤늦게 또 급속하게 형성됨으로써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만한 훈련이 부족할 수 밖 에 없었던 여건에 적지 않은 책임이 있을것이다. 동시에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협소하고 경직된 미술제도가 유입되어 그것이 오랜 동안 지속되었던 현실의 탓 내지는 그로 인한 큐레이터 쉽의 미비나 재정적 지원의 한계로 인한 이유 또한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설치미술의 양적·질적 증대는 분명 변화하는 현실에 적극하려는 움직임의 소산이며, 그간의 경직된 미술체제에 대한 거부와 그것의 해체를 시도하는 긍정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불가피하게 서구와는 다른 경로로 형성될 수 밖에 없는 우리 미술의 내적 필연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설치미술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설치미술의 진행은 서구와는 달리 모더니즘의 미술 역사의 전 과정을 거쳐 조금씩 진행되어 형성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을 다 거쳐야하는 것만도 아니라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그것을 개괄하고 그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가능성을 보다 현실적 구체적으로 찾아내는 일은 가능하고 중요하다. 즉 설치를 또 다른 외래의 미술어법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삶과 일상에 충실하면서 스스로를 확장할 수 있는 우리의 어법으로 정착시키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는 공중들 대중들과는 유리된 채 위로부터 유입됨으로써 겪어왔던 우리 미술의 근본적인 허황됨과 동요를 서구 미술의 진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한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에서 그 문맥에 따라
그들의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미술에 대한 소망은 오늘날의 삶에서 미술이라는 영역이 처하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우리 앞에 열려있다는 생각이다.
설치미술 : 그 수용, 정착과 관련한 몇가지 논의 - 이 영 옥 (미술평론가. 전주대 미술학과 교수) 『현대미술관연구 제 7
집』 (199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