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널리.알림

털.난.찻잔

글쓴이
메렡.ㅔ리사벹ㅎ.ㅗㅍ펜헤ㅣㅁ>+김정락
쓴날
2025-05-03 04:32
본수
1712



김정락
·
<털 난 찻잔>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기원을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 보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는 단지 무의식이나 꿈 혹은 그런 영역으로부터
촉발된 상상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먼 과거부터 인간에게 거대한 꿈동산이었다.
여기서 만큼은 어떤 사상이나 법과 도덕과 같은 제도적(문명적)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영화나 문화계에 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도그마는 다시금 예술의 불온성을 감옥에 가두려고 하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조심해야지.

예술은 인간을 사상이나 강령으로 인간을 구속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갇혀있는 현실을 한번쯤 낯설게 보게끔 만들고,
일상에 젖어있는 매너리즘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초현실주의는 이러한 목적에 가장 성공한 현대미술운동이 아니었나 싶다.
살바도르 달리나 호앙 미로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기에 한 여류 예술가의 작품을 더하고 싶은데,
오펜하임(Meret Elisabeth Oppenheim)의 <털 난 찻잔>이다.

그녀는 조형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시인이기도 하였고,
당대 유수의 예술가들, 이를테면 앙드레 브레통,
루이 브뉘엘, 막스 에른스트 등과 어울리며 소위
‘마술적 초현실주의(Magical Surrealism)'이란 새로운 계통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만 레이(Man Ray)의 사진작품에 모델로도 등장하며,
초현실주의자들의 뮤즈로 추앙받았다.
그녀의 손에 닿은 일상용품들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거의 마술과 같다.
<털 난 찻잔>은 세라믹의 단단하고 매끄러운 질감에 익숙한 우리의 통념과
사물에 대한 인식을 무참하게 산산조각 내 버린다.

보는 우리는 벌써 입안에 거슬리는 털의 이물감을 뱉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