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ㅇ), 한 둥긂의 ‘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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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으면 진리고 생명이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가 가고 ‘나’가 오는 것이다. 그때 ‘참나’가 된다.”
- 「버들푸름(12)」에서
“일원(一圓)은 법신불(法身佛)이니 우주(宇宙) 만유(萬有)의 본원(本源)이요
제불(諸佛) 제성(諸聖)의 심인(心印)이요
일체(一切) 중생(衆生)의 본성(本性)이다.”
- 『대종경』에 실린 「교리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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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ㅇ). 지금 ‘이응’이라고 말하지만
본디 이응이 태어날 때는 소리가 없었다.
굳이 바꾸어 말하면 ‘없소리’(無聲)다. 없는 소리로, 없소리.
입은 닫히고 목구멍은 열려있는,
그러니까 목구멍 숨줄이 뻥 뚫렸으되 나지 않는 소리 글꼴이다.
한마디로 나지 않는 ‘소리없’(無音)에 다 열린 글꼴이랄까!
숨구멍이 다 뚫려서 다다 열고 연 이응 글꼴의 세계는
그러므로 ‘끝없’(無限)의 우주다.
없는 소리에 오히려 수많은 소리가 끝없다.
뚫린 목구멍 숨줄은 목숨이요,
말씀을 들깨운 말슴은 말숨이요,
말숨에 깨우친 빈탕의 참 마음(眞心:ᄆᆞᆷ)은 얼숨 쉰다.
이응은 얼숨의 맨 처음 바탈(本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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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은 ‘끝없’의 한 둥긂
다석 류영모는 “쉬지 않는 불식(不息)이 숨쉬는 식(息)입니다”라면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은 줄곧 숨쉬고 줄곧 생각하여 하늘에 도달하여
내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이 곧장입니다.
코로 숨쉬는 데도 몸을 곧게 정신을 숨쉬는 데도 곧이 곧장 이것이
양기법 양생법 양심법입니다.
몸을 곧이 곧이 이것이 장생법입니다.
곧이 곧장 정신을 가지고 입다물고 숨쉬고 곧이 곧장을 가지면
숨이 잘 쉬어지고 호흡이 잘 됩니다.”라고 하였다(『다석일지(4권)』
「버들푸름(23)」).
입다물고 숨쉬는 자리가 이응이다.
두 콧구멍으로 들어간 들숨은 새끼줄 꼬듯 목구멍을 타고 가면서
숨바람으로 소용돌이 일으키며 깊숙이 파고든다.
‘않’(內)과 ‘밖’(外)은 막힘이 없고,
안팎을 두루 이어놓은 숨구멍은 있는 그대로 산숨(生氣)의 용오름이다.
들숨이 끝나는 낮고 깊숙한 숨자리에 속알 힘이 크고 짱짱하다. 얼의 뿌리가 든든하다.
들숨의 깊은 바다에 큰 물고기 곤(鯤)이 들썩인다.
들숨이 날숨으로 뒤바뀌는 찰나에 곤(鯤)은 붕(鵬)으로 날아오른다.
날숨이 끝나는 더욱 낮고 깊숙한 숨자리에 ‘꿍꿍’(想像)의 날개가
구만리(九萬里)로 치솟는다.
아득히, 까마득히 먼 날숨의 한늘에 붕(鵬)이 높높다.
오호라! 이응은 온 우주가 한통속으로 드나드는 움쑥한 들숨이요,
불쑥한 날숨이구나.
맨 그 자리는 아주, 아주 크고 깊고 고요하여라.
그림1) 『역해종경사부합편 전』(대종교총본사, 개천4406) 136쪽에 실린
‘삼묘도’(三妙圖)이다.

이 셋(圓方角)은 한글 닿소리의 첫 얼개다.
학산은 원(圓)을 머리, 방(方)을 몸통, 각(角)을 두 다리에 빗댔다.
‘밖’(外)을 에둘렀으나 ‘않’(內)은 텅 빈 것이 둥근 원(圓)이다.
에둘러 그린 꼴이 이응이라는 동그라미일뿐 하늘은 본디 꼴이 없다.
‘꼴없 꼴’(形無形)이 이응의 본꼴이다.
꼴없는 하늘 머리로 참숨 쉬는 몸에 ‘얼나’(靈我)가 솟나리라.
학산 이정호는 『훈민정음의 구조원리』에 쓰기를
“ㅁ이 방정을 의미하듯이 ㅇ은 원신(圓神)을 의미한다.
ㅁ은 유한성을 말하고 ㅇ은 무한성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도 무한성의 상징인 목구멍은 하늘이요,
유한성의 상징인 입술은 땅임에 틀림이 없다.
하늘은 공허하며 ‘땅을 싸고 둥글고 고리 같으니 그림자이고’,
땅은 착실하여 ‘하늘을 싣고 모나고 반듯하니 몸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몸집(體)과 그림자(影)는 서로 안고 안기고 하여
그 속에는 ‘이기(理氣)도 들어있고 신명(神明)도 모여 있다’고 하였다.
ㅇ이 우리의 머리를 상징한다면 ㅁ은 우리의 배를 상징한다.
이것이 또한 건곤(乾坤)의 이치이며,
인간 속에 천지(天地)가 들어 있고,
그 천지(天地)를 두 다리로 버티고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의 상(像)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
다석도 “하늘로 머리를 들면 시원하다.
시원하니까 생각이 난다.
백두산에서 물이 흐르듯이 마음에서 생각이 나온다.”라고 하였다(「버들푸름(29)」).
‘무한성의 상징인 목구멍은 하늘이요,
유한성의 상징인 입술은 땅임에 틀림이 없다’고 하였다.
입술은 있으나 소리없이 숨구멍만 뚫렸으니,
이응의 까닭은 모든 소리의 첫바탈(根本)이 아닐까.
학산도 이응의 역학적 의의(意義)에 대해
“ㅇ은 후음중(喉音中)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며
모든 초성의 근본이라고 하겠다.
후부(喉部)는 모든 발음기관 가운데서 가장 깊고 가장 윤택(潤澤)하므로
구강오행(口腔五行)으로는 수(水)에 해당한다.
사시(四時)로는 겨울이요,
방위(方位)로는 북(北)이며,
오성(五聲)으로 우조(羽調)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없는 소리 이응이 온갖 첫소리의 맨 밑바탈(根本)이다.
『역해종경사부합편 전』(대종교총본사, 개천4406)의
「삼일신고서(三一神誥序)」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은 그윽이 엎드려 듣사오니. 뭇 고동(機)은 허울(象)이 있고,
참 임자(宰)는 얼굴(形)이 없는지라. 그 없음을 빙자(藉)하여,
질그릇 만들 듯 조화(亭毒)함을, 가론 한얼이오.
그 있음을 빌어서, 나고 죽으며 즐기고 괴로움을, 가론 사람과 만물(物)이니.
그 처음에 한얼이 주신 성품(性)은 본대 참함(眞)과 가달(忘)이 없건마는.
이로부터 사람이 받는 품수(品)가, 이에 정함(粹)과 얼럭(駁)이 있으니.
비유컨대 온갖(百) 내(川)가 젖은 바에, 외로운 달(月)이 한가지로 찍히고.
한번 비가 부루(潤)는 바에, 온갖(万) 풀(卉)이 다르게 꽃다움 같으니라.”라고.
그윽이 엎드려 듣는 그 소리는 없이 나는 소리다.
한얼은 얼굴도 없이 ‘없’을 맨 밑바탈(藉:根本)로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얼이 처음 주신 맨 첫 바탈은 ‘없’ 하나다.
저절로 다 다르게 이루는 꽃다움에 ‘없’의 산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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