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거북이
글쓴이
강진모
쓴날
2026-06-23 16:14
본수
2182
한국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을 꺽은 결정적인 사건은
1991년의 구소련의 붕괴였다면,
구소련의 척추를 꺽은 결정적인 사건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참사였다.

미소 군비경쟁을 하느라고 재정적으로 거덜이 난 구소련 체제의 부패와 무능으로
체르노빌 핵참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사능 문제를 소련 혼자 감당할 힘이 없었다.
(우리는 체르노빌의 반복무늬를 일본의 후쿠지마에서 다시 보고있다)
그리하여 돈이 필요한 소련 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통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서독으로부터 거금을 받으면서 구소련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유럽 녹색당의 기원 또한 이 체르노빌 참사이다.
우연한 바람이 방사능 낙진을 불어가 거름?이 많이 된 나라들,
독일과 스웨덴 등에 녹색당이 뿌리를 깊히 내렸다.
그러나 2011년 일본의 후쿠지마 핵참사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이렇다할 생태환경운동으로 발전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기후변화에 의한 이상건조현상으로 요즘 체르노빌 주변에 산불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낙진을 나이테 속에 기억한 나무들이 산불로 인해 불에 타게되면
그 죽음의 재는 하늘로 올라가 또 다시 확산이 시작된다.
핵사고의 악몽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문제이므로 1989년 독일에서는
체르노빌 기념비 공모전이 있었다.
그때 응모하여 당선은 되었지만 독일 녹색당 사람들이 가난하여 제작이 미루어지다가
우여곡절 끝에 2016년에 밤베르크에 설치된 기념비,
체르노빌의 거북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991년의 구소련의 붕괴였다면,
구소련의 척추를 꺽은 결정적인 사건은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핵참사였다.

미소 군비경쟁을 하느라고 재정적으로 거덜이 난 구소련 체제의 부패와 무능으로
체르노빌 핵참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사능 문제를 소련 혼자 감당할 힘이 없었다.
(우리는 체르노빌의 반복무늬를 일본의 후쿠지마에서 다시 보고있다)
그리하여 돈이 필요한 소련 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통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서독으로부터 거금을 받으면서 구소련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유럽 녹색당의 기원 또한 이 체르노빌 참사이다.
우연한 바람이 방사능 낙진을 불어가 거름?이 많이 된 나라들,
독일과 스웨덴 등에 녹색당이 뿌리를 깊히 내렸다.
그러나 2011년 일본의 후쿠지마 핵참사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는
이렇다할 생태환경운동으로 발전되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기후변화에 의한 이상건조현상으로 요즘 체르노빌 주변에 산불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낙진을 나이테 속에 기억한 나무들이 산불로 인해 불에 타게되면
그 죽음의 재는 하늘로 올라가 또 다시 확산이 시작된다.
핵사고의 악몽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문제이므로 1989년 독일에서는
체르노빌 기념비 공모전이 있었다.
그때 응모하여 당선은 되었지만 독일 녹색당 사람들이 가난하여 제작이 미루어지다가
우여곡절 끝에 2016년에 밤베르크에 설치된 기념비,
체르노빌의 거북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