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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불상타 ... 어린왕자

글쓴이
금누리
쓴날
2001-09-03 16:55
본수
44306

빅톨 위고 victor hugo 의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은
그리스도 말씀들처럼 많이 읽힐 만큼 뛰어난 책이라고 들었다.

나도 어릴 때 "장발장" 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이 읽도록 한글로 펴낸 그 이야기를
가슴 조아리며 읽었다.

그러나 몇 해 뒤 다시 읽었을 때,
지난 느낌이 되살아나지 않아 몇 쪽을 펼치다가 닫아두었다.

그 뒤로 나는 한때 빅톨 위고를 잊고 있었고,
내 '장발장'은 아마 새로 알림 종이나 이것 저것 싸는 골종이로 사라졌으리라.
그런데 서른 다섯 살 즈음 가까운 벗이 "너 참 불상타"라는 짧은 이야기 묶음을 내어 주었다.
두드러진 글이름 그 첫 쪽을 보니 바탕 이야기가 빅톨 위고의 "레 미제라블"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글 쓰기가 지닌 새로움에 놀라면서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어 내리니,
옛 느낌은 한 찰나에 터졌다.



한 90해 앞에 우리말로 옮겨진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잡지
"청춘" 첫 책에 덤으로 찍어낸 이야기책으로
길이는 본디 이야기에 빗대면 1 할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느낌으로 마음을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담아내었을까.
나는 그 며칠 뒤 본디 글을 빠짐없이 옮긴 빅톨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려고 새 책을 찾았으나,
펼치기에 앞서 보고싶은 마음이 곧 사라졌다.
'너 참 불상타" 라는 글이름이 지닌 짧고 세찬 느낌이 빠르게 다시 솟아,
본디 이야기를 읽으면 그러한 좋은 느낌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남선이 우리 글로 베껴낸(?) 이야기에 본디 이야기 보다 훨씬 더 깊이있게 지은이의 뜻이 담겨 있고
읽는 이의 마음을 더 움직인다는 것은 나 홀로 생각일까.


내가 젊었을 때로 돌아가 큰 배움터에서 두째 해를 보낼 때, 한 해 밑에 들어온 계집이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의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를 나에게 주었다.
생텍쥐페리의 그림 솜씨는 뛰어나 보이지 않았지만 담고 있는 뜻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지닌 속뜻이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말씨나 골라 쓰인 낱말들이 잘 이어지지 않고 끊이듯 읽혀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가 옮긴 책을 찾아 다시 읽어보았으나 더 막히며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더불어 본디 글로 쓰인 이야기는 어떨까 하는 생각만 머리 속을 맴돌았다.
마침내 나는 지은이처럼 프랑스 글로 읽고 싶어졌고,
낮은 프랑스 말 솜씨로 낱말집을 들척이며 한줄 한줄 힘겹게 읽어나갔다.
그런데 또 다른 계집 하나가 내게 잉글리시로 펴낸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를 주었다.
다른 사람이 옮긴 것이 아니라 생텍쥐페리 스스로 옮겨 쓴 것이었다.

나는 세 나라 글을 빗대어 보며 프랑스 글로 된 본디 이야기를 힘겹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 글로 된 것이라면 한나절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두께인데도,
나는 몇 달에 걸쳐 읽고는 마음이 더 크게 움직임을 느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처럼 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옮기는 일 그 차이에 따라 느낌이 크게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또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읽을 때는 한달 ... 세 째는 보름... 네 째는 이레...
그 다음엔 사흘...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루...
재베뀌쇌상빼르손느아벡뀌빠르레베리따블망
마침내 "어린왕자" 이야기만은 프랑스사람들이 읽는 빠르기로 소리내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젊은이들이여, 아래에 있는 이 글귀 하나만이라도 되풀이하여 우리 글 빠르기로 소리내어 읽어 보라.
j'ai vEcu seul, sans personne avec qui parler vEritablement,
재 베뀌 쇌, 상 빼르손느 아벡 뀌 빠르레 베리따블망
자, 어린 왕자를 다시 부른 셈이니 그가 곁에 나타난다.



젊은이들이여. 이곳에 온 왕자들이여!.
최남선님의 "너 참 불상타"도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7L2letit.prince /// 2001 09 03에 쓴 글이나...
-T
D

2003 11 05 오늘 우리말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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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톨 위고 victor hugo 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성경만큼 많이 읽힐 정도로 훌륭한 책이라고 들었다.

나도 어릴 때 주인공 이름 ‘장발장’ 이라는 청소년 용 번역판을 가슴 조아리며 읽었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읽었을 때,
옛 감동이 살아나지 않아 몇 쪽을 펼치다가 닫아두었다.

그 뒤로 나는 한동안 빅톨 위고를 잊고 있었고,
내 ‘장발장’은 아마 신문용지나 포장용 골판지로 사라졌으리라.
그런데 서른 다섯 살 즈음 가까운 벗이 ‘너 참 불상타’ 라는 짧은 소설을 내어 주었다.
두드러진 제목 그 첫 쪽을 보니 원작이 빅톨 위고의 ‘레 미제라블’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멋진 한글 제목이 지닌 신선함에 놀라면서 앉은자리에서 모두 읽어 내리니,
옛 감동은 한순간에 폭발했다.



한 세기 전 우리말로 번역된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잡지 ‘청춘’ 창간호 부록으로
길이는 원작의 10분지 1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감동을 모두 담아낸 것일까.
나는 그 며칠 뒤 완역된 빅톨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려고 책을 구했으나,
펼치기도 전에 보고싶은 마음이 곧 사라졌다.
'너 참 불상타’의 짧고 강렬한 감동이 빠르게 다시 솟아,
원작을 읽으면 그 감동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남선의 복제품(?)이 원작 보다 훨씬 큰 감동을 준다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나의 청춘시절로 돌아가 대학교 2학년 때, 한 1학년 여학생이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를 나에게 선물했다.
생텍쥐페리의 그림 솜씨는 뛰어나 보이지 않았지만 담고 있는 뜻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내용이 어린이와 어른 사이를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대화나 낱말 선택이 어색하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가 옮긴 책을 찾아 다시 읽어보았으나 더 어색하여 감동은 없었다.
더불어 원작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만 늘어났다.
결국 나는 원어로 읽고 싶어졌고,
프랑스어 초급실력으로 사전을 들척이며 한줄 한줄 힘겹게 읽어나갔다.
그런데 또 다른 여학생이 내게 영어판 ‘어린 왕자’를 선물하였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것이 아니라 원작자가 스스로 옮겨 쓴 것이었다.

나는 세 나라 글을 빗대어 보며 프랑스 글로 된 원작을 힘겹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 글로 된 것이라면 몇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는 두께인데도,
나는 몇 달에 걸쳐 읽고는 더 큰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처럼 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번역에 따라 감동 차이가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또 다시 읽어보았다.
두 번째는 한달 ... 세 번째는 보름... 네 번째는 일주일...
그 다음엔 삼일...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루...
재베뀌쇌상빼르손느아벡뀌빠르레베리따블망
마침내 ‘어린왕자 이야기만은 프랑스사람들이 읽는 빠르기로 소리내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젊은이들이여, 아래에 있는 이 글귀 하나만이라도 되풀이하여 우리 글 빠르기로 소리내어 읽어 보라.
j’ai vEcu seul, sans personne avec qui parler vEritablement,
재 베뀌 쇌, 상 빼르손느 아벡 뀌 빠르레 베리따블망
자, 어린 왕자를 다시 부른 셈이니 그가 곁에 나타난다.



젊은이들이여. 이곳에 온 왕자들이여….
최남선 선생의‘너 참 불상타’도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ZLzletit.prince
DT

국민대 학보 제737호(2001년09월03일자)